반도체특별법 산자위 의결
이달중 본회의 처리 전망
클러스터 지원 근거 마련
근로 특례 추가 논의키로
‘주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이 빠진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반도체특별법)이 사실상 여야 합의로 국회 산자위에서 통과됐다. 이를 두고 산업계에서는 ‘반쪽 법’ 또는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현실을 외면한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가 인공지능(AI)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반도체 기술력 확보는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부상했는데, 정치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세계 정상의 반도체 기업에 주52시간 근무라는 족쇄를 채운 채 경쟁하라고 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2017년 이미 반도체 등 중요 업종에 대해서는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근로법을 제정했고, 그 결과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는 24시간 3교대 근무체제를 갖출 수 있었다.
중국은 996(오전 9시~오후 9시 퇴근, 주 6일제) 문화가 이미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최근 시스템반도체는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도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노동계 눈치만 보다가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치권의 미적지근한 지원으로 인해 더 이상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강한 질타도 나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4일 전체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이언주·정진욱, 국민의힘 이철규·박수영·고동진 의원 등이 제출한 8개 법안을 통합한 반도체특별법을 처리했다.
이 법안에는 대통령 소속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설치,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및 기반 시설 조성·지원, 전력·용수·도로망 등 관련 산업기반 확충,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인허가 의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야가 2036년 12월까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회계’를 설치·운영해 산업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중소기업 위주인 반도체 위탁생산 산업에 대해서도 지원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여야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주 52시간 근로시간 예외 적용’ 문제에 대해서는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과 특성을 고려해 연구개발 인력의 근로시간 특례 등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소관 상임위에서 그 대안에 대해 계속 논의한다”는 부대의견을 달았다. 법 통과 이후에도 산자위와 기후환노위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여야는 경쟁 심화 등 엄중한 산업 환경을 감안할 때 더는 법제정을 미룰 수 없어 이러한 방식으로나마 법안을 처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철규(사진) 산자위원장은 “반도체업계가 요구한 주 52시간제 완화 등 근로시간 유연화 특례가 반영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면서도 “반도체산업에 대한 지원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는 절박함 속에 여야가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김원이 민주당 의원은 “주 52시간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국민의힘의 양해와 이해 덕에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며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부대의견에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라는 문구가 명확히 들어가지 않은 데 반발해 퇴장했고, 같은 당 김성원 의원 역시 “연구개발 인력의 근로시간 특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을 제외하고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건 취지에 어긋난다”며 반대 의견을 남겼다.
업계에서는 반도체특별법의 연내 통과가 사실상 확정된 것에 대해 일단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주52시간근무제 예외 조항이 빠진 것을 놓고는 강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제조 라인의 경우 대부분 자동화가 돼 있어 실질적인 영향이 크지 않지만, 연구개발(R&D)의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 사항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R&D의 경우 연구원들이 설계 단계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고객사와의 소통으로 피드백을 받는 등 단기간 동안 임팩트 있게 진행된다. 속도가 생명”이라며 “주52시간제 적용으로 근무의 연속성이 끊기거나, 해외 고객사에 대한 피드백이 늦워지는 경우 R&D 기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토로했다.
다른 관계자는 “일부 R&D 인력이나,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연구원들에만 52시간제 예외가 적용될 사안인데 노동계의 입장이 크게 반영된 것 같다”며 “소부장 업체들도 소재 개발이나 장비 개발을 위한 R&D 프로젝트가 이뤄져 대기업-중견·중소기업 모두 여파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주요국들은 자국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천문학적인 현금 투입은 물론이고, 대대적인 규제 철폐로 자국 내 생산거점 유치를 위한 전방위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미 상무부는 2024년 반도체 과학법 인센티브 프로그램으로 15개 기업과 예비 계약을 체결하고, 390억달러(56조원) 중 300억달러(43조원) 이상 지원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유럽 반도체법을 제정하고, 2027년까지 33억유로(5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반도체 제조시설에 대한 투자, EU 전 지역의 반도체 허브 구축, 새로운 반도체 기술 시범 운영, 설계·기술 역량 개선, 기업 자금조달 접근성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작년 10월 열린 ‘역대 산업부 장관 초청 특별대담’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을 단순히 개별 기업에 대한 혜택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미국 중국 일본이 막대한 보조금 지원을 결정한 것은 반도체가 단순한 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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