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환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경영전략 연구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자원기반관점(resource-based view)은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자원과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풍부한 토지나 광물, 고유한 기술이나 특허, 숙련된 근로자와 근면성, 효율적 운영 프로세스, 탁월한 리더십 등이 그러한 조건을 가진 자원과 능력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 기술이 기업 경영과 시장 경쟁 전반을 재편하는 오늘날, 경쟁우위의 핵심은 빠르게 데이터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데이터는 아주 오래 전부터 기업경영을 비롯한 인간생활에 활용되어 왔지만, 중요한 사안일수록 개인 또는 집단의 직관, 경험, 상호작용에 의한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목적으로 활용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데이터는 AI 기반 경쟁력의 출발점이자 전략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AI 시대에 데이터가 전략적 해자(moat)로 평가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AI 모델의 성능은 알고리즘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얼마나 풍부하고 고품질의 데이터를 활용해 학습시켰는지에 따라 좌우된다.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현실세계의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데이터셋을 보유한 기업은 더욱 정교한 예측, 추천, 판단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그 결과 운영 효율성, 고객 경험 향상, 신제품 개발 속도 등이 급격히 향상된다. 의료나 금융처럼 고도의 정확성과 안전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특정 조직이 장기간 축적해 온 의료 영상이나 거래 패턴, 그리고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는 외부에서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점적 자산이다. 여기에 개인정보보호 규제의 강화는 데이터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동시에, 합법적이고 윤리적으로 수집된 고품질 데이터의 가치를 더욱 희소하고 높은 자산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금융, 통신, 유통 산업 등에서 발생한 일련의 해킹과 정보유출 사고는 데이터의 전략적 가치가 커질수록 그 취약성 또한 확대된다는 사실을 속속 입증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데이터는 강력한 자원인 동시에 기업이 직면하는 리스크의 핵심 지점이 된다.
첫째, 최근의 사이버 공격은 단순한 정보 탈취 수준을 넘어,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랜섬웨어, 공급망을 통해 침투하는 멀웨어, 내부 계정을 탈취하는 스피어 피싱까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둘째, 시스템 장애나 네트워크 중단은 과거에는 일시적 불편에 그쳤다면, 이제 데이터 기반으로 실시간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조직에서는 전체 활동체계의 중단으로 이어진다. AI 모델의 오류나 데이터 품질 문제로 인해 잘못된 분석 결과가 서비스에 반영되면 고객 피해, 규제 위반, 경영 판단 오류 등 우발적 손실도 증폭된다.
셋째,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각국 정부는 데이터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법규 위반 시 부과되는 벌금, 손해배상, 집단소송은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평판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넷째, 이러한 모든 리스크는 또다른 경쟁우위 원천으로서의 가치가 급증하고 있는 평판과 신뢰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진다. 고객 정보가 유출되거나 서비스 중단이 반복되면 소비자는 기업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특히 플랫폼 기업, 금융기관, 병원과 같이 고객 신뢰가 곧 경쟁력인 산업에서는 단 한 번의 사고도 치명적이다.
‘곡간이 작을 때는 좀도둑이 드나들지만, 곡간이 커지면 도적떼가 몰려든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 고려 말 왜구가 조창과 군량미 창고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이유는 국가가 비축한 물자가 막대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도 산성 창고나 세곡 창고는 지역 경제의 중심이자 자원의 집적지였기에 대규모 도적단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현대의 ‘데이터 곡간’ 역시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기업이 축적한 데이터가 많을수록 공격자들이 더 군침을 흘리게 된다.
따라서 방화벽을 설치하고 침입 탐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전통적 접근만으로는 복잡해진 리스크 환경을 감당할 수 없다. 기업은 데이터의 수집, 저장, 처리, 분석, 공유, 폐기에 이르는 전체 주기를 관통하는 통합 데이터 리스크 아키텍처를 구축해야 한다. 보안, 프라이버시 보호, 운영 안정성, AI 모델 거버넌스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통합하는 다층적 관리 체계가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데이터 최소화, 민감도 기반 분류, 암호화, 안전한 학습환경 구축 등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체계적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데이터는 AI 시대의 가장 강력한 전략적 자산인 동시에 언제든 치명적 취약점으로 급변할 수 있다. 앞으로 기업의 경쟁우위와 열위는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느냐’에 못지 않게 ‘얼마나 안전하고 책임있게 관리하느냐’에 의해 크게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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