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장대한 역사만큼 책사들이 많았다.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이사, 한 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를 재통일한 장량, 촉나라 유비의 제갈량을 비롯해 전국시대 위나라 문후의 오기 등이 대표적이다. 서로 적국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한배에 타다’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주인공 오나라 합려의 책사 오자서와 월나라 구천의 책사 범려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가운데 월나라 범려 얘기를 해보자.
책사(策士)는 ‘계책을 세우는 사람’이다. 황제나 왕을 도와 천하를 도모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갖춘 사람을 가리킨다. 지모와 능력을 바탕으로 꾀나 전략을 세워 일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조력자다. 모사(謀士), 군사(軍師), 막료(幕僚) 등으로도 불린다.
옛부터 중국에서는 인재를 중시했다. 천하를 차지하려면 유능한 책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제나 왕들은 책사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상(은) 나라를 무너뜨리고 주 나라를 세운 문왕이 위수(渭水) 가에서 낚싯바늘 없는 낚시를 하던 강태공을 영입한 고사는 유명하다. 삼국 시대 유비가 제갈량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세번이나 그의 초가집을 직접 찾았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도 있다. 촌의 한량이었던 유비가 촉을 세워 위·오와 함께 천하를 삼분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천하를 3개로 나누는 계책)라는 책략 덕분이었다.
책사는 세상이 돌아가는 판을 읽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또 권력의 속성과 흐름에 대한 직관력 그리고 인간의 심리에 대한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진퇴(進退) 여부를 미리 내다보고 결단하는 힘도 있어야 한다.
중국에서 책사는 천하대란의 시기였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에 본격적으로 태동했다.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위무기(魏無忌), 초나라의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 등 4군자가 키웠던 식객(食客)들이 바로 책사였다. 4군자들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유지하고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범려(范蠡)는 춘추시대 말기의 책사이자 뛰어난 정치가, 군사가다. 정가에서 떠나 운둔 후에는 전설적인 상인으로 천하의 돈을 쓸어모은 인물이기도 하다.
범려는 본래 초나라 완지 사람으로, 고향에서 미치광이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월나라의 대부 문종의 추천을 받아 월왕 구천(句踐)을 섬기게 됐다. 원래 오나라에 출사하려 했는데 오나라엔 오자서라는 탁월한 책사가 있어 월나라로 갔다고 전해진다.
월나라가 숙적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구천이 오나라에 인질로 잡혀갔을 때, 범려는 구천을 따라가 3년간 온갖 수모를 견디며 복수를 도왔다. 구천은 ‘섶(땔감)에 누워 쓴 쓸개를 맛본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의 주인공이다. 구천에게 오왕 부차의 변까지 핥게 하는 치밀한 모략으로 그를 월나라로 복귀시킨 범려는 구천을 보좌하며 20년에 걸쳐 철저히 복수를 준비한다. 마침내 기원전 473년, 월나라는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구천은 춘추시대의 마지막 패자(覇者)로 등극한다.
대업을 이룬 후 범려는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는 삶아진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운명을 직감했다. 그래서 구천에게 “군주와 고난은 함께할 수 있으나 안락은 함께할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미련 없이 관직에서 물러나 잠적했다. ‘공을 이루면 몸을 물린다’는 ‘공수신퇴’(功遂身退)의 철학이다. 그의 동료였던 문종(文種)은 범려의 토사구팽 충고에도 불구,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구천 곁에 남아있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다. 범려의 통찰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직을 떠난 범려는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 바꾸고 상업에 뛰어든다. 오늘날 매점매석에 해당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으며, 모은 재물을 세차례나 몽땅 나눠주고도 부자가 됐다. 말년에는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중국 상인들은 그의 뛰어난 경제적 식견과 상술을 기려 그를 재물의 신(財神), 상인의 성인(商聖)으로 추앙하고 있다.
범려는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보기 드문 인물이다. 특히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아는 현명함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중국 젊은이들의 롤 모델로 꼽히고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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