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세종본부 과학바이오팀 부장
37만개의 부품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부품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확한 타이밍과 순서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였다.
비록 이륙 직전 엄빌리칼 압력센서 신호 이상이 감지돼 불안한 출발을 보이는 듯 했지만 칠흑 같은 새벽의 어둠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국민들의 커다란 기대에도 흔들림 없이 누리호는 발사대를 떠나 거침 없이 우주를 향해 솟아 올랐다.지난달 27일 오전 1시 13분 네 번째 비행에 나선 누리호는 우주를 무대로 총 21분 24초에 걸쳐 국민들에게 감동과 환호를 선사해 준 주인공임에 틀림 없었다. 발사부터 위성 분리, 첫 교신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완벽한 무대 연출력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벅찬 감동과 동시에 진한 여운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민간 체계종합기업으로 발사체 제작을 총괄하며, 발사 운용 전 과정에 참여해 성공을 이끌어 내 국내 우주개발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본격적으로 민간 주도의 우주시대를 개막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디게 됐다.
하지만, 누리호 4차 발사에 성공했다는 안도감과 자부심도 잠시. 우리나라가 발사체 선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더 험난한 도전과 난관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세계 발사체 시장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지금껏 우리나라의 발사체 개발 역사를 되돌아 보면 이미 검증된 기술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물론 우주개발 초기 단계에 이런 접근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글로벌 7대 우주강국 위상을 확보한 우리나라가 언제까지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우주 선도국가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 갈 수는 없다.
보다 과감한 도전과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통해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전략이 요구된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2006년 세계 최초로 민간 우주로켓 ‘팰컨1’을 개발한 뒤, 세 번 연속 실패하고 네 번째 시도 끝에 성공해 민간 우주발사체 상용화에 서막을 열었다. 팰컨1 발사를 통해 스페이스X는 팰컨9, 팰컨 헤비, 스타십을 개발하는 기술적 진보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화성 우주선 ‘스타십’ 개발 과정은 그야말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수차례 발사에 실패한 경험을 토대로 재사용 로켓기술을 완성했고, 발사 비용도 10분의 1 이하로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 스타십 무인 시험비행에선 9번의 실패를 이겨내고 10번째 발사에 성공해 우주 개발은 도전과 실패의 반복 과정임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발사체 개발사업을 보면 실패 대신 안전한 길을 선택해 걸어온 듯 하다. 누리호는 엄밀하게 따지면 러시아 앙가라 로켓의 75톤급 엔진 기술을 기반으로 국산화한 것이다. 메탄엔진 기반의 재사용발사체로 개발하려는 차세대발사체 역시 스페이스X가 이미 10년 전 확보한 기술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누리호 반복 발사 과정도 그렇다. 누리호가 1.5톤급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성능임에도 3차 발사는 500㎏, 4차 발사는 960㎏의 위성을 보내는 데 만족했다. 다음 발사에서는 중소형 위성 대신 1톤 이상의 대형위성을 정지궤도에 올리는 도전도 고려해 볼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실패에 대한 사회적·정책적 부담이 크다. 한 번 실패하면 기회는 박탈 또는 축소되고, 낙인이 찍혀 ‘과감하게 도전하라’는 말은 선언적 수사에 그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혁신과 도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적 발사체를 개발하기 위해선, 주변에서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했음에도 도전을 감행한 끝에 세계 1등에 올라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반도체’, 정주영 현대 회장의 ‘조선’과 같은 신화를 재현할 수 있는 미친 도전과,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모험이 필요해 보인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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