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인 운영·지배구조 도마위
김 의장, 공식 입장조차 안 밝혀
주식 팔아 4846억 현금화 논란도
“총수 스스로 신뢰 회복 나서야”
대한민국의 일상이 털린 대형 사고에도 한국 직책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고 책임에서 회피한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의 ‘대리경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돈은 한국에서 벌고, 기업 지배는 미국에 거주하는 김 의장이 하고, 책임질 매는 한국 법인의 월급 사장이 맞는 책임과 지배 권한이 구분된 경영구조 탓에 3370만명의 피해 고객이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쿠팡을 지배하는 김 의장이 3370만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된 최악의 사고를 내고도 사과는커녕 한마디 공식 입장조차 밝히지 않는 것도 공분을 키우고 있다.
김 의장은 한국 쿠팡 지분을 100% 보유한 미국 모회사 쿠팡Inc. 의결권 74%를 갖고 있는 최대 주주다. 그는 2021년 한국 법인 등기 이사직을 사임한 뒤 법적 책임에서 철저히 빠져 있다.
이번 쿠팡 사태를 규명하기 위해 2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현안 질의에서도 매는 박대준 한국 쿠팡 대표 혼자 맞았다.
박 대표는 과방위 질의에서 ‘김 의장이 직접 사과할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에 “한국 법인에서 벌어진 일이고 제 책임하에 있다”고 일축하며 김 의장 책임론을 막아섰다.
김 의장은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 지정에서 제외되는 등 국내 규제를 회피했고, 국회 출석 요구가 있을 때마다 해외 체류 등을 이유로 출석을 피해 왔다.
김 의장의 대리 경영은 노동·사회 현안 곳곳에서도 이미 수차례 반복돼 왔다. 쿠팡 고용구조, 물류센터 노동환경, 단시간노동자 처우, 과로·안전 문제 등이 논란을 낳을 때마다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재벌 대기업 총수들조차 국회에서 국민 앞에 사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김 의장이 쿠팡 주식을 처분해 5000억원가량을 현금화한 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김 의장은 지난해 11월 자신이 보유한 클래스B 보통주를 클래스A 보통주 1500만주로 전환한 뒤 이를 매각해 약 4846억원을 현금화했다.
김 의장은 현재 쿠팡Inc 클래스B 보통주 1억5780만2990주(지분율 8.8%)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주식은 주당 29배의 차등의결권이 부여돼 실질 의결권 지분율은 73.7%에 달한다. 이 지분으로 한국 쿠팡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전직 중국인 직원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공분을 사는 대목 중 하나다. 사고 원인을 보안 실패가 아닌 개인 범죄로 몰아가려는 모습이다.
또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이후 내놓은 첫 사과문에서 ‘유출’이 아닌 ‘노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 유출은 중대한 사고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를 노출로 표현하면 법적 책임으로 인정되는 범위가 모호해져 책임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로 쿠팡에는 대규모 과징금 제재가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유출 규모·관리 소홀 정도에 따라 과징금은 매출의 최대 3%까지 부과될 수 있다. 쿠팡의 국내 매출을 기준으로 하면 1조원 이상의 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쿠팡은 지난해 연 매출이 처음으로 4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 연 매출은 50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정렬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은 2일 쿠팡의 계정 정보 유출과 관련한 최대 1조원대 과징금 부과 가능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책임 공백 속에서 김 의장이 직접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쿠팡 매출의 90% 이상이 한국에서 나오고, 핵심 서비스·물류·배송 인프라 역시 한국에서 운영되는 만큼 총수 스스로 소비자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쿠팡Inc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5.36%나 빠졌다. 이날 낙폭은 지난달 5일(5.94%) 이후 한 달 만에 가장 컸다.
박순원 기자 ss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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