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모(相撲)는 ‘국기’(國技)이자 일본 문화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스포츠다. 지름 4.55m에 불과한 원형 모래판(도효·土俵)에서 펼쳐지는 짧은 승부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의식(儀式)에 가깝다. 그래서 외국인 역사(力士)의 등장은 “성역을 흔든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스모는 외국인 없이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그 변화는 전통을 위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을 더 단단하게 만든 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신화 속 의례에서 국민 스포츠로

스모의 기원은 일본 신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신들이 힘겨루기를 통해 땅을 차지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스모가 처음부터 신에게 올리는 제의(祭禮)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8세기 나라·헤이안(奈良·平安) 시대가 열리면서 스모는 국가 공식 행사로 자리 잡는다. 귀족들이 일왕 앞에서 경기를 벌이는 ‘스모 세치에’(相撲節會)가 대표적이다.

가마쿠라·무로마치(鎌倉·室町) 막부 시대에선 스모는 사무라이들의 체력 증강, 전투 훈련 등과 깊이 연결됐다. 이들은 스모를 단련 수단으로 삼았고, 각 지방 영주는 스모를 장려했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스모는 대중 오락 스포츠로 성장했다. 도효가 만들어지고, 요코즈나(橫網) 제도가 자리 잡았으며, 정기 흥행 체제도 확립됐다.

메이지 시대 서구식 스포츠 개념이 들어오면서 스모는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국가적 후원을 받았다. 1909년 스모 전용 경기장인 료고쿠(兩國) 국기관(현재의 국기관) 개장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프로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모는 전후 경제성장기와 함께 TV 중계가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는다. 스타 선수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스모 선수가 ‘국가 영웅’으로 소비되는 문화가 정착됐다.

◆첫 외국인 요코즈나 아케보노와 몽골 장사들

일본 스모 역사에서 첫 외국인 요코즈나는 하와이 출신 아케보노 타로(曙太郞)다. 학창 시절 농구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신장 203㎝, 체중 230㎏라는 위압적 체구로 일본 스모계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는 일본인 라이벌들을 압도하면서 1993년 외국인 선수 최초로 요코즈나에 등극했다.

일본 사회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전통의 상징’을 외국인에게 넘겨줘도 되는가라는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그의 진지한 태도와 일본 문화에 대한 존중은 점차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케보노는 훗날 ‘스모를 진정 사랑한’ 외국인 요코즈나로 평가받는다.

아케보노 이후 일본 스모의 최정상에는 계속 외국인 이름이 올랐다. 특히 몽골 출신 선수들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2000년대 들어 스모계는 몽골 요코즈나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쿠호(白鵬), 하루마후지(日馬富士), 가쿠류(鶴龍)가 대표적이다. 특히 하쿠호는 2015년 1월 도쿄에서 열린 경기에서 정상을 차지, 통산 33승으로 스모 사상 최다우승 기록을 44년 만에 갈아치웠다. 이후 그는 ‘45회 우승’이라는 ‘영원히 깨지기 힘든’ 대기록을 남겼다.

몽골 선수들의 ‘지배’는 스모가 더 이상 일본인만의 경기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일본 스모계는 이 시기, 복잡한 감정을 경험했다. 외국인 선수들의 거센 세력 확대에 위기감을 느낀 스모협회는 2000년대 초 한 부(部屋, 스모 도장)당 외국인 1명 제한 규정을 도입해 ‘속도 조절’에 나섰다. 그러나 흐름을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외국인 장사들은 압도적 성적을 이어갔다. 일본 스모는 더 이상 ‘일본인만의 스포츠’가 아니었다.

◆우크라 난민 청년의 기적 같은 우승

그리고 지금, 스모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21세 청년, 아오니시키 아라타(본명 다닐로 야브후시신)가 지난 23일 후쿠오카국제센터에서 열린 일본스모협회 공식 대회 결승에서 ‘요코즈나’ 호쇼류 도모카쓰를 꺾고 우승한 것이다.

몽골 출신 강자들이 장악해온 스모계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가 결승 무대에 선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최고 장사를 꺾으며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신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 극적인 것은 아오니시키의 여정이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차로 두 시간 반 떨어진 빈니차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 처음 스모와 만났다. 2019년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스모 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일찍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침공은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가족과 함께 독일로 피란했고, 그의 스모 인생도 끝난 듯 보였다.

그때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인연을 맺은 간사이대학 스모팀 코치 야마나카 아라타(山中新大)가 손을 내밀었다. 야마나카의 도움을 받아 그는 2022년 4월 홀로 일본에 와 다시 스모를 시작했다. 그리고 2023년 가을, 프로로 데뷔했다. 마침내 일본으로 넘어온 지 3년 반, 16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을 맛봤다.

그의 폭발적 성장세에 스모계는 깜짝 놀라고 있다. 그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요코즈나 바로 밑 등급인 ‘오제키’ 승급이 사실상 확정됐다. 아사히 신문은 “데뷔 후 오제키에 오르기까지 걸린 속도는 1989년 이후 2번째로 빠른 기록”이라고 전했다.

전쟁으로 인해 끊어질 뻔했던 꿈을 일본에서 되살려낸 아오니시키, 그의 우승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역경과 불확실성을 뚫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낸 한 청년의 서사이자, 일본 스모계가 목격한 새로운 기적이었다. 이제 스모계는 이 우크라이나 출신 장사의 다음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전통의 힘은 개방에 있다

전쟁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온 한 청년이 요코즈나를 꺾고 정상에 선 장면은 스모가 더 이상 ‘일본만의 경기’가 아님을 웅변한다. 글로벌 스포츠로서의 스모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첫 외국인 요코즈나 아케보노가 세계화의 문을 열었다면, 몽골 황금세대가 그 흐름을 굳혔고, 이제 우크라이나 출신 아오니시키가 그 변화를 결정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일본 청년들의 관심이 줄어든 사이 외국인 선수들은 스모의 엄격한 규율과 정신을 성장의 토대로 삼아 스모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정체성 위협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스모를 지속시키는 힘은 외국인 선수들의 도전과 열정에서 나오고 있다. 새로운 피와 문화적 다양성이 들어오며 더욱 튼튼해지고 있는 것이다

스모의 본질은 국적이 아니라 품격과 정신,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디는 태도임을 아오니시키가 다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승리는 스모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 배타성이 아니라 개방과 도전 위에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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