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0%·내년 1.8%로 상향
반도체 등 IT 제외하면 1.4%
2027년도 1%대… 3년연속
한국은행이 27일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0%, 1.8%로 소폭 높여 잡았다. 사실상 ‘0%대 성장’ 우려에서 탈출하는 흐름을 예고한 것이다. 한은이 이날 처음 발표한 2027년 전망치도 1.9%다.
한은은 조심스럽게 ‘회복세’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장기 저성장’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우선 성장율 전망치가 올해부터 3년 내내 1%대에 머문다. 또한 반도체를 제외하면 수출·내수 등 실물경제의 회복세가 여전히 제한적이다.
◇성장률 상향… 반도체·내수 개선이 견인
한은은 27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0%로 제시했다. 지난 8월 전망(0.9%)에서 0.1%포인트(p)를 올린 것으로 올해 초 0%대 저성장 우려가 짙었던 흐름과 비교하면 완만한 개선이다.
한은은 올해 연간 전망치를 2023년 11월(2.3%) 이후 지난해 5월(2.1%), 11월(1.9%), 올해 2월(1.5%), 5월(0.8%) 지속해서 낮추다가 8월(0.9%)부터 높이기 시작했다. 이번 한은 전망치는 한국금융연구원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1.0%와 같고,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0.9%보다 높다.
내년 성장률 전망 역시 1.6%에서 1.8%로 상향됐다. 내년 성장률 1.8%는 정부와 KDI, IMF가 내놓은 전망치 1.8%와 같고, 한국금융연구원(2.1%), OECD 전망치 2.2%보다 낮은 수준이다. 내년 잠재성장률(2024~2026년 연평균 2.0%, 2025~2029년 연평균 1.8%)에도 대체로 부합한다.
성장률 전망을 끌어올린 핵심 요인은 반도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 회복 속에 반도체 중심의 수출 회복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났고, 하반기 들어 소비심리가 개선되면서 서비스업과 민간소비 흐름도 강해졌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서비스수지 개선세가 이어진 점, 건설투자 부진이 점진적으로 완화된 점도 성장률 상향에 영향을 미쳤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올해 하반기의 경우 소비는 심리 호조와 소비 쿠폰 지급으로 빠르게 개선됐고, 수출은 관세 영향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예상보다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며 “내년 성장 흐름을 보면 소비 회복세가 지속되고 건설 부진이 완화되겠으며, 수출은 관세 영향으로 둔화하겠지만 반도체의 경우 양호한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물가 전망도 조정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와 내년 모두 2.1%로 제시됐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 위로 높아지며 수입물가가 상승한 점, 여행·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 상승이 이어진 점 등이 반영됐다. 근원물가 상승률 역시 내년 2.0%로 상향됐다.
◇기준금리는 2.50% 동결… “강한 회복의 신호는 아냐”
성장률 전망이 상향되면서 통화정책 여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했다.
지난 5월 금리 인하 이후 네 차례 연속 동결이다. 성장률이 예상보다 견조하게 나오면서 경기 둔화를 우려해 금리를 서둘러 내릴 필요성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고환율과 수도권 집값 부담, 지정학적·통상 환경 불확실성 등도 금리 인하를 서두르기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당분간 금리 인하 가능성과 동결 가능성을 모두 열어둘 필요가 있다”며 “금융통화위원 6명 중 3명은 3개월 후 금리를 연 2.5%로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고 나머지 3명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장률 상향이 곧바로 경기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됐다. 한은이 이날 제시한 2027년 성장률은 1.9%다. 성장률 자체는 잠재 수준에 부합하지만, 회복 속도가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특히 성장률 상향 요인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 수출에 집중된 만큼 글로벌 IT 사이클 변화가 성장 경로를 크게 좌우할 전망이다. 한은은 인공지능(AI) 확산이 이어져 반도체 수요가 탄탄하게 유지될 경우 내년과 2027년 성장률이 각각 0.2%p, 0.3%p 상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대로 AI 투자 열기가 둔화해 반도체 수출이 정체될 경우 성장률은 0.1%p, 0.3%p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회복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비IT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회복력은 여전히 약하다는 뜻이다.
이지호 한은 조사국장은 “올해 전망치 0.1%p 상향 조정 중 반도체 경기 기여분이 0.05%p이고 내년 0.2%p 중에서도 반도체가 0.1%p”라며 “IT 제조업을 제외한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는 1.4%다. 좋은 성장, 충분한 성장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통상환경과 관세 정책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미·중 갈등 완화, 외국인 관광객 증가 등은 상방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무역갈등 재격화·국제 금융시장 불안·비IT 제조업 부진 등은 하방 요인으로 꼽혔다. 박세준 한국은행 국제종합팀장은 “AI 투자 경쟁이 이어지고 있어 미국이 반도체 품목에 과도한 관세를 부과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이번 전망에는 2026년 3분기부터 약 15% 수준의 반도체 관세를 가정해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2027년까지 성장률이 모두 1%대에 머무는 점을 감안하면 구조적 부담은 여전히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내수와 비IT 제조업의 회복 속도가 더디고, 성장 기여도 역시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3년 연속 1%대 성장 전망은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는 신호”라며 “우리 경제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측면도 있지만, 과거와 같은 빠른 성장 국면은 이미 지나갔다. 이 흐름이 일시적 조정에 그치기보다 구조적으로 굳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장률 둔화는 잠재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잠재성장률 자체가 하락하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반도체 회복을 모두 감안해도 이 정도 성장률은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다”며 “자본의 노후화와 인구 감소가 가장 큰 구조적 제약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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