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영을 선포했던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결국 인사쇄신의 칼을 뽑아들었다.
부회장단 전원이 퇴진하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3분의 1이 물갈이됐다. 9년간 유지해 온 부회장단 사업 전략 컨트롤타워인 ‘헤드쿼터’(HQ) 체제도 폐지됐다.
사장 승진이 유력했던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사진·39)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은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를 맡으며 그룹 내 역할을 확대했다. 입사 후 ‘매년 승진’ 기록은 올해로 중단됐다.
롯데그룹은 26일 이사회를 열고 2026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과 경영 위기를 해쳐나가기 위한 조직 혁신 차원의 인사로 보인다.
◇부회장단 전원 용퇴…CEO 3분의 1 갈렸다
롯데그룹은 이번 인사를 통해 ‘세대교체’를 가속화했다. 이번 임원 인사에서 전체 최고경영자(CEO)의 3분의 1에 달하는 20명의 CEO가 교체됐다.
특히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이영구 롯데 식품군 총괄대표 부회장,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등 부회장단 전원은 일선에서 물러난다. 4명의 부회장은 젊고 새로운 리더십 중심으로 혁신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용퇴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지주 공동대표 이사에는 고정욱 사장과 노준형 사장이 각각 내정됐다. 두 공동대표는 재무와 경영관리, 전략과 기획 등 두 파트로 나눠 전문성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주요 계열사에선 젊은 리더십이 대거 중용되면서 리더십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그룹 전체 60대 이상 임원 중 절반이 퇴임했다. 작년 이뤄진 2025년도 임원인사에서도 60대 롯데 계열사 대표이사 8명(35%)과 60대 이상 임원의 50% 이상이 퇴임했었다.
특히 핵심 계열사이면서도 몇년째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유통 계열사 ‘올드맨’들이 십자포화를 맞았다. 미래 성과 창출이 기대되는 인재들을 새롭게 배치한 것.
롯데백화점, 롯데마트·슈퍼, 롯데e커머스 등 유통 주요 계열사를 비롯해 롯데웰푸드 CEO가 교체됐다.
롯데백화점엔 역대 최연소 대표이사가 나왔다. 신임 대표이사에 1975년생 정현석 롯데백화점 아울렛사업본부장이 부사장으로 발탁 승진하며 내정됐다. 젊은 수장을 통해 유통사업 전반에 변화와 혁신을 꾀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정 부사장은 2000년 롯데백화점으로 입사해 롯데백화점 중동점장과 몰동부산점장을 역임했다.
롯데e커머스 대표에는 온∙오프라인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e커머스사업부 구조조정과 턴어라운드 전략수립을 추진했던 추대식 전무가 승진하며 선임됐다.
롯데웰푸드 대표이사에는 서정호 롯데웰푸드 혁신추진단장 부사장이 내정됐다. 서 부사장은 올해 7월 롯데웰푸드 혁신추진단장으로 부임해 경영진단과 함께 롯데웰푸드의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끌어 왔다. 앞으로 장기적인 수익성 개선과 미래 성장을 위한 신사업 발굴 등에 집중한다.
롯데건설도 CEO가 바뀌었다. 부동산 개발 사업 전문성·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 역량을 인정받은 오일근 부사장이 승진하며 내정됐다. 오 부사장은 PF사태로 약해진 롯데건설의 재무 건전성을 조속히 회복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화학도 지난해에 이어 LC USA, 롯데알미늄, GS화학 등에서 쇄신 기조를 이어갔다.
이번 정기인사에선 2명의 사장 승진자가 나왔다. 박두환 롯데지주 HR혁신실장은 국내 대기업 최초 직무 기반 HR제도 도입, 생산성 고도화 등 그룹 전반에 HR혁신을 강력하게 추진한 점을 인정받아 사장으로 승진했다.
롯데GRS를 이끌었던 차우철 대표는 사장으로 승진하며 롯데마트·슈퍼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차 사장은 1992년 롯데제과로 입사 후 롯데정책본부 개선실, 롯데지주 경영개선1팀장 등을 역임했으며, 2021년부터 롯데GRS 대표이사를 맡았다. 롯데GRS 재임 시절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고 신사업 경쟁력 강화, 글로벌 사업 확장 등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롯데마트·슈퍼의 통합 조직관리, e그로서리사업 안정화, 동남아 중심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주도한다.
롯데는 이번 임원 인사에 직무 기반 HR제도 철학을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직무 전문성과 선제적인 혁신을 바탕으로 탁월한 성과를 낸 인재를 검증해 젊은 리더십을 중용했다.
이번 정기 인사에서 신임 임원 규모는 81명으로 전년대비 30% 증가했으며, 발탁 승진자 수도 크게 늘었다. 황형서 롯데e커머스 마케팅부문장, 오현식 롯데이노베이트 AI Tech Lab실장, 김송호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PE팀장, 백지연 롯데물산 투자전략팀장 등은 각 분야의 직무 전문성을 인정받아 직급 연한과 상관없이 신임 임원으로 발탁 승진했다.
◇9년 유지 HQ 없앴다…계열사 ‘책임경영’ 강화
롯데는 지난 9년간 유지한 사업 총괄 체제를 폐지하고 각 계열사 중심의 책임경영을 강화한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롯데는 설명했다.
롯데는 2017년 비즈니스 유닛(BU·Business Unit) 체제, 2022년에 헤드쿼터(HQ·HeadQuarter)체제를 도입해 유관 계열사의 공동 전략 수립과 사업 시너지를 도모해 왔다.
롯데는 더욱 빠른 변화 관리와 실행 중심의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를 강화한다. 계열사는 대표와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바탕으로 핵심사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다만, 롯데 화학군은 HQ를 폐지하고 전략적 필요에 따라 PSO(Portfolio Strategy Office)로 조직을 변경해 사업군 통합 형태의 거버넌스를 운영한다. 롯데 화학군 PSO는 기능 조직으로서 화학 계열사들의 장단기 전략과 사업포트폴리오 연결·조정 등 시너지 창출 역할을 수행한다.
◇장남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로 역할 확대
신동빈 롯데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사진·39)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이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를 맡으며 그룹 내 역할을 확대했다. 이번 인사로 신 부사장은 그룹의 핵심 신사업인 바이오 부문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2022년 인사에서부터 ‘매년 승진’ 기록은 써 온 신 부사장은 이번에도 사장 승진이 유력시 됐으나 무산됐다. 신 부사장은 2020년 일본 롯데 입사를 시작으로 2022년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 2023년 롯데파이낸셜 대표이사, 지난해 롯데지주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신 부사장은 앞으로 기존 박제임스 대표와 함께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를 맡는다. 롯데의 바이오 사업 성장 속도를 높이기 위한 의사결정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또 신 부사장은 롯데지주에 신설되는 전략컨트롤 조직에서 중책을 맡는다. 그룹 전반의 비즈니스 혁신과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주도한다.
롯데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 신속한 변화 관리와 실행력 제고를 위한 성과 기반 수시 임원인사와 외부 인재 영입 원칙을 유지해 나갈 방침이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newsnews@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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