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紅高粱·홍고량)은 1920~1940년의 중국 산동성 지방을 배경으로 한 민초들의 모습을 통해 중일전쟁을 고발한 영화다. 고량주 증류업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장예모의 감독 데뷔작이자 영화 배우 궁리의 데뷔작이다. 두 사람은 이 영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영화에는 주인공 궁리가 한센병 환자에게 시집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가마가 수수밭을 지날 무렵 궁리의 발이 가마 밖으로 살짝 나온다. 가마꾼의 한 사람인 장원(姜文)은 그녀의 발을 만지며 가마 안으로 넣어준다. 잠시 후 수수밭의 수수들은 좌우로 흔들린다.
중국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발을 보여주는 것은 몸을 허락한다는 의미였다. 왜 발이 성과 관련된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유력한 설명은 ‘전족’(纏足)과 관련이 깊다.
10세기경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천 년간 지속된 전족의 풍습은 서너살 된 어린 여자아이의 발을 천이나 가죽으로 감싸 발육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발가락을 꺾어 발바닥에 붙인 후 천으로 단단히 동여매어 발 크기를 10cm 정도로 유지했는데, 극심한 고통을 수반한 잔인한 전통이었다. 이에 따라 성인이 돼서도 발의 크기는 10cm 남짓 밖에 되지 않았으며, 발등은 굽어서 튀어나오고 발가락은 발바닥쪽으로 구부러졌다. “전족 두발에 눈물을 한 섬이나 흘린다”고 했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겠을까. 기형적으로 작은 발은 여성들의 육체 노동을 제한하고, 남성의 보호 아래서만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전족으로 인해 작고 변형된 발은 또한 남성들에게 여성의 성적 매력을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정상적이 아닌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연보’(蓮步)라 하여 남성들의 성적 쾌감을 자극했다. 발은 여성 신체 중 가장 은밀한 부분 중 하나로 간주되었으며, 남편 외의 다른 남성에게 맨발을 보여주는 것은 몸을 허락하는 의미로 통할 정도였다. 남성들은 전족한 발에 강한 성적 페티시즘을 느꼈으며, 춘화에선 남성이 여성의 전족을 애무하는 장면이 묘사되기도 했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만들기 위한 지독하게 잔인한 방법이 전족이었던 것이다.
중국 고대 5대 소설의 하나인 ‘금병매’(金瓶梅)에서 천하의 난봉꾼 서문경은 반금련과 전족을 통해 만난다. 서문경이 반금련의 전족을 만지자 반금련이 웃음으로 화답한 것이다. 금병매는 무협들의 이야기인 ‘수호전’에선 철저히 배제된 인간들의 온갖 ‘욕망’을 정면에서 포착한 작품이다.
이런 성적 코드는 서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그것이다. 발이 큰 두 언니는 왕자의 시험에서 떨어지고, 발이 작은 신데렐라가 왕자의 선택을 받았으니 말이다.
이같은 중국의 문화도 근대에 들어선 달라지게 된다. 영화 ‘송가황조’(宋家皇朝)에선 쑹칭링(宋慶齡·송경령)이 사랑하는 사람 쑨원(孫文·손문)을 만나기 위해 자신감 넘치게 두발로 달려간다. 그녀의 뒤론 전족을 한 할머니가 그녀를 붙잡으려 뒤뚱거리며 달려온다. 이제 중국에서도 여성이 자신의 당당하고 자연스런 발로 삶을 개척해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중국을 사랑한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쑹칭링은 쑨원의 부인이다. 쑨원이 서거한 후 왕징웨이 등과 함께 중국 국민당내 좌파의 중심 인물이 돼 장제스와 대립했으며, 중국공산당에 가담해 1959년부터 1965년까지 화인민공화국의 제2대 부주석과 제3대 부주석을 역임했다. 친동생 쑹메이링(宋美齡·송미령)은 정적 장제스의 부인이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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