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465.30’ 기록
수입기업 원가부담 악재 작용
원재룟값 상승에 식품업 압박
D램값 급등… IT제품 등 영향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1500원 선에 육박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원가부담이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발 반도체 품귀 현상이 메모리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가전제품, 자동차 등의 원가도 더 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원유운반선 운송단가도 계속 올라 물류비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미중 수출 분쟁은 긴장감이 다소 진정된 분위기지만, 대신 중일 무역전쟁이 조짐을 보이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까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들의 원가 부담은 결국 제품 가격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4.30원(0.29%) 오른 1465.30을 기록했다. 환율은 지난 9월 24일(1405.00원) 1400원 선을 넘은 이후, 지난 7일엔 1450원 선을 돌파하는 등 2달째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환율 상승은 수입 기업에 원가 부담 악재로 받아들여진다. 전반적인 물가 인상을 초래해 내수 침체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작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조업의 경우 환율이 10% 상승하면 원가는 3.68%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기업들도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은 국내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수출하는 구조인데, 협력사들은 원자재를 수입하는 입장이어서 원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고환율이 지속되면 산업 생태계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기업 입장에서 고환율은 일시적으로 우호적이지만 가파르게 급등해 환리스크 헤지(위험 회피)가 예상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위험 신호가 될 수 있다”며 “부품 조달이나 가격 산정에 시차가 있어 당장의 문제는 크지 않지만 현재의 고환율 기조는 내년 사업 전략을 짜는 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식품업계도 가격 인상 압박이 커져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식품 기업들은 주로 해외에서 수입해온 원재료를 통상 3~6개월가량 비축한 뒤 사용한다.
하지만 환율 상승으로 수입 비용이 상승하게 되면 지금 수입한 원재료의 비용 부담은 몇 개월 뒤 제품 가격으로 반영된다. 예를 들어 밀과 대두, 옥수수 같은 곡물의 경우 라면이나 제과류 등 주요 가공식품에 사용되는데, 최근 식품기업들은 원가 부담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잇따라 단행했다.
롯데웰푸드는 환율이 10% 변동할 경우 35억원 규모의 세전 손익 영향이 있고, CJ제일제당 같은 상황에서 세후 이익이 약 13억원가량 감소한다고 각각 공시한 바 있다.
AI발 공급 부족으로 D램 가격이 급등한 것도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D램은 스마트폰, PC, 노트북 등 IT제품뿐 아니라 자동차와 스마트홈 기기 등의 전자제품에도 적용된다.
D램의 대표격인 DDR4는 지난 5월부터 가격이 뛰기 시작해 지난 9월엔 5.15달러로 작년 12월보다 276%나 상승했다. DDR5 현물가격의 경우 지난달 10달러 수준에서 이달 들어서는 16달러를 돌파해 2주 만에 60%가량 급등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4분기 범용 D램 가격 상승 전망치도 기존 8~13%에서 18~23%로 상향 조정하고 이런 추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PC 등은 물론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 전반에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자동차 역시 최근 반도체 비중이 늘고 있어 원가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물류비 상승까지 기업들의 원가 부담을 더 압박하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주간 통합 시황 리포트 등에 따르면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주간 운임은 24.7%나 급등해 연중 최고치까지 갱신했다.
이는 미국의 러시아산 석유 제재에 따라 중국의 대체 조달 수요가 커졌고, 중국계 화주 물량이 중동시장으로 대거 유입된 것이 배경이다.
리포트는 사용할 수 있는 선박이 제한돼 있고 선주들의 내달 초순 물량 유입 기대감은 높아, 운임이 내려가더라도 그 조정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분간 현재와 같은 고운임이 계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석유제품 가격도 치솟고 있어 소비자들의 부담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국내 보통 휘발유 가격은 18일 기준으로 리터 당 1730.27원으로 한 달 전(1661.11원)과 비교해 70원가량 상승했다.
같은 기간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 초·중반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석유제품 가격 상승은 국제유가보다 환율과 물류비의 영향이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 중국이 무역전쟁 조짐을 나와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도 부각되고 있다. 당장 큰 변화는 없지만 언제든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와 물가인상의 악순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상황은 증시가 너무 오른 데 따른 ‘착시효과’가 더 큰 충격으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며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계속 있었는데도,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지수를 끌어올렸고 이성이 마비돼 지금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환율 상승으로 미국에 유학 보낸 학부모도 생활비를 더 보내야 하고, 미국 투자자들도 한국에서 환전할 때 매력이 없는 시장 상태”라며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되돌아가 ‘실물 생산성’에 기반해 우리 경제를 정확하게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장우진·임재섭·이상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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