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원화 가치의 추락이 심상치 않다. 달러당 1400원선을 넘어 1500원대까지 넘보고 있다. 엄혹했던 1998년 IMF 경제위기 시절의 연간 평균 환율인 1394.97원을 뛰어넘는다. 전문가들도 1400원대의 고환율 시대가 ‘뉴노멀’임은 어쩔 수가 없다는 분위기다. 이런 ‘원화의 타락’에도 책임있는 당국자들의 경고음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정의 중심이 온통 ‘내란 척결’과 내년 지방선거에만 쏠려있는 탓이다.

환율이 이렇게 급등(원화가치 급락)한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꼽히는 게 해외 투자 열풍이다. 올들어 9월까지 ‘서학 개미’와 국내 법인, 금융기관 등 전체 내국인들이 사들인 해외 주식 순매수 규모는 718억달러에 이른다. 해외에 투자하려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 하는 까닭에 달러 수요 증가 즉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 주식을 팔고 있다.

이런 수급상의 요인보다 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가 있다. 첫째 국내 기업들이 수출로 확보한 달러를 국내에서 원화로 바꾸지 않고 있다. 노란봉투법, 상법, 온실가스 규제 등 반기업 규제에 국내에 투자할 의욕을 잃고 있어서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으로 대미 투자를 늘리는 것도 한 요인이다.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으로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 직접 투자해야 할 금액은 10년간 20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환율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정부는 2029년까지 4년간 국가부채를 487조원 늘리는 재정확대 정책을 천명했다. 내년에만 역대 최대인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하면서 국채 발행으로 232조원을 조달하겠다고 했다. 총지출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한 적자국채는 110조원이며, 연간 국채이자만 34조원이다. 이처럼 천문학적으로 돈을 뿌리니 원화 가치의 미래가 어두울 수 밖에 없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돈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곳은 중앙은행이다.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영국 중앙은행)이 탄생한 건 왕실이 흥청망청 재정을 써대 급락한 파운드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원화가 이렇게까지 ‘타락’하도록 방치한 것은 한국은행의 책임이 크다. 원화의 가치는 대내적으론 물가, 대외적으론 환율로 나타난다. 그런데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물가나 환율 점수 모두 ‘낙제점’이다. 피부 물가는 두배 이상으로 뛴지 오래다. 1100원에서 1200원대에서 움직이던 환율 또한 뛰면서 수입물가 또한 불안하다. 한은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원화의 가치를 지키려면 고통을 감내하려는 결기가 필요하다. 특히 한은 총재의 역할이 막중하다.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게 정석이다. 포퓰리즘 정부가 흥청망청 재정을 푼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과잉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원화에 대한 신뢰가 살아날 수 있다. 이런 통화정책은 한계 기업이나 자영업엔 고통을 요구하지만 꼭 나쁘게만 볼 건 아니다. 좀비 기업 청산 등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과 이창용 총재는 원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가. 유감스럽게도 별로 없다. 기준금리를 적어도 미국 수준에 맞추도록 노력하지도 않았고, 시중 통화량을 줄일 생각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 총재는 틈만 나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딴 세상 사람처럼 훈수다.

‘외환정책의 트릴레마(Trilemma)’ 이론에 따르면 자유로운 자본 이동, 독립적인 통화정책, 환율 안정이라는 세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모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 환율을 안정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 총재와 대비되는 인물이 미국의 현 제롬 파월 연준(Fed) 의장과, 레이건 시대 연준 의장을 맡았던 폴 볼커다. 파월 의장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파면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박속에서도 오로지 경제 상황에 의거한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시중 유동성을 줄이기 위해 2022년 7월부터 양적긴축(QT)을 시작, 3년여동안 2조4000억달러를 흡수했다. 볼커 전 의장은 1970년대말 오일쇼크에 의해 야기된 물가 급등 문제를 풀기 위해 살해의 위협속에서도 기준금리를 연 20% 수준으로 올려 달러 가치를 안정시켰다. 이들은 강한 주위의 압력에서도 중앙은행의 임무인 달러 가치 안정을 위한 결단을 내렸다.

원화 가치가 추락한 것은 경제 주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보고 대한민국을 떠난다는 뜻이다. 달러 수급이 아닌,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원화의 타락을 낳고 있다. KDI는 최근 경제 구조의 개혁 없은 잠재성장률은 0%대로 떨어질 것이라며, 재정정책을 점차 정상화해가고 이자도 못갚는 좀비기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22년 대선 후보 당시 “대한민국이 곧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기축통화국은 언감생심이고, 3류 국가로 추락할 형편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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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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