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율 관세 영향 9월 소비자물가지수 3.0% 상승

맥도날드 평균가격 40% 상승, 서민층 매출 줄어

델타항공 프리미엄석 5%↑… 소비 양극화 뚜렷

1인당 2000달러 ‘관세 환급’ 배당금 효과 일시적

“바이든 전철 밟는 중”… 관세정책 실효성 의문도

LA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는 미국 소비자. EPA 연합뉴스
LA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는 미국 소비자.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이 결국 미국 민심의 역풍을 맞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후 늘어난 유동성으로 인해 가팔라진 인플레이션이 채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2기 정부가 수입품 전반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생활물가가 다시 급등해 서민 부담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대비 3.0% 상승했다. 이미 고금리·고물가로 지출 여력이 줄어든 저소득층은 기본 식사조차 망설이는 수준까지 내몰렸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LA타임스는 16일(현지시간) 맥도날드, 델타항공, 호텔 체인 등 주요 기업의 매출 데이터를 토대로 소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맥도날드는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5% 증가했지만, 정작 주 고객층인 저소득층의 매장 방문은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반면 고소득층 방문은 저소득층 이탈 분을 거의 그대로 메우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방문객은 소폭 늘었지만 전체 흐름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맥도날드의 이런 추세는 가격 인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맥도날드 메뉴 평균 가격은 2019년 대비 2024년까지 40% 치솟았다. 대표 메뉴인 빅맥은 4.39달러에서 5.29달러(약 7700원)로, 맥너겟 10조각 세트는 7.19달러에서 9.19달러(1만3400원)로 올랐다. 이미 팬데믹 이후 유동성 급증으로 가격이 크게 뛰었는데,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관세가 겹쳐 수입 원자재·식자재 가격이 또다시 상승 압력을 받은 것이라고 LA타임스는 진단했다.

소비 양극화는 항공·숙박업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델타항공의 2분기 일반석 매출은 전년 대비 5% 감소한 반면, 프리미엄석 매출은 5% 증가했다. 부유층의 소비 여력은 늘어난데 반해 서민층의 지출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코스타에 따르면 호텔업계도 고급 브랜드 매출은 2.9% 늘어난 반면, 저가 호텔 매출은 3.1% 감소했다.

서민 부담은 가계 재정지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신용평가사 밴티지스코어에 따르면 연 소득 4만5000달러(6560만원) 미만 가구의 60일 이상 연체율은 팬데믹 이후 급증한 뒤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는 임차인의 절반에 해당하는 2260만명이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에 쓰고 있으며, 연 소득 3만달러 미만 임차인의 주거비 제외 잔여 소득 중앙값은 월 250달러(36만4500원)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2001년보다 무려 55% 줄어든 수치다.

뉴욕타임스(NYT)도 최근 “미국의 생활물가가 다시 치솟으면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불만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팬데믹 이후 급등한 주거비·식비 압박이 관세 인상으로 더욱 심화됐으며, “특히 저소득층이 체감하는 ‘생활필수품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맥도날드·월마트·타겟 등 생활 밀착형 매장의 방문객 감소가 감지되고 있다. NYT는 “관세가 사실상 서민 증세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을 전했다.

이 같은 민심의 변화에 트럼프 대통령도 위기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백악관 내부에서도 ‘고물가 분노’를 잠재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물가 압박이 거세자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에서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식료품 재료인 쇠고기, 커피, 토마토, 바나나·파인애플 등 열대과일, 견과류, 향신료 등 농축산물 200여 종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밖에 관세 세수를 활용해 국민 1인당 2000달러(292만원)씩 배당금 형태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관세 환급’ 성격의 현금 지원책을 통해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NYT와 미국 주류 언론은 관세를 인하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하고 있다.

이미 각종 생활필수품·의류·가전·수입식자재 등에 부과된 관세가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만큼, 단기 현금 지급만으로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는 “현재 상황은 바이든 행정부 초기의 인플레이션 국면과 유사하며, 트럼프도 결국 바이든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며 관세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 최근 엡스타인 이슈가 다시 불거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궁지에 몰리는 모양새다. 백악관과 공화당은 내년 중간선거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생활물가 상승은 미국 유권자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인 만큼 내년까지 관세 인상 여파가 지속될 경우,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관세가 미국 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민심은 점점 더 등을 돌리고 있다. 물가 상승과 소비 양극화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막연한 보호무역 논리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가 안정 종합대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물가 급등에 지친 서민층의 불만 게이지는 상승 중이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결국 그의 정치적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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