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前 국회입법조사처장
중앙권력을 향한 소용돌이의 정치, 오늘의 한국정치를 그대로 말해준다. 오래전 그레고리 헨더슨(G. Henderson)이 ‘Korea:The Politics of the Vortex’(소용돌이의 한국정치<1968, 1988 증보판, 2013 국내 번역본>)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규정했던 표현이다. 주한 미대사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방대한 역사·사회학적 자료를 정리한 진단이었다. 중간집단의 부재와 중도층의 실패가 소용돌이 구조와 맞물려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
그의 한국 사회 내부에 대한 분석에 이견들도 있지만, 중앙권력을 향한 ‘소용돌이 정치’라는 통찰은 한국 정치학계에서도 탁견으로 인용되고 있다. 나중에는 산업화와 더불어 다원사회로의 변화 가능성도 전망했지만, 중앙의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소용돌이는 여전하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 정치적 명분이 소진된 상황에서 중앙권력을 둘러싼 양극화된 진영정치는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정치세력이 유사 종교집단처럼 교조화된 양상이다. 중도의 목소리는 거의 절멸 수준이다.
한국 정도 규모의 국가에서 이렇게 중앙집권화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중앙집권 구조는 국가 주도의 급속한 산업화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동력이었다. 소용돌이의 산업화였다. 한국의 산업화 성공 배경으로 박정희의 리더십을 드는 사람도 있고, 한국인의 역량과 노동력의 헌신을 들기도 한다. 여러 요소가 복합된 결과겠지만 중앙집중화된 국가적 동원구조를 빠뜨릴 수 없다.
중앙집권화의 동력은 산업화뿐 아니라, 역동적 민주화를 성공시킨 자산이기도 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 광화문 광장으로 모아질 수 있는 소용돌이 힘이었다. 그러나 중앙집권의 소용돌이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는 부합하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과제는 다양성의 공존이다. 그런데 다양성의 공존이 아니라 선악의 정치, 양극화의 진영정치가 주도하고 있다.
지방자치제의 실시 등 일부 분권화 전략을 시도해오고 있으나, 수도권 집중은 그대로이고 지방은 소멸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정치의 중심인 정당정치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인 중앙정당 체제만 허용되고, 지방선거도 이들 중앙정당이 좌우한다. 더구나 중앙의 진영화된 양대 정당이 지배하고 있다. 지방정치도 중앙권력을 둘러싼 소용돌이 정치에 포섭돼 있다.
최근에는 이 소용돌이 정치가 결국 하나의 ‘깔때기’로 귀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둘러싼 논란이다. ‘깔때기’라는 표현은 정봉주 전 의원 등이 팟캐스트 ‘나꼼수’(나는 꼼수다)에서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자화자찬을 웃어넘기며 쓰던 은유였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자신이 그 용어의 창시자라고 자임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정치적 갈등과 논란이 결국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로 귀결되는 한국 정치를 보면, 깔때기 현상 그대로다.
내란청산론도 사법리스크와 맞물려 제기되는 쟁점이다. 그러나 정치적 공방거리는 아니다. 여권의 공세 프레임으로 정치적으로 호명되긴 하지만, 특검을 비롯해 사법적으로 처리 중인 사건이다. 중앙집중의 소용돌이에 사법리스크 논란으로 귀결되는 깔때기 정치, 민주공화국 이념의 구현과 민생을 위한 대의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만의 권력투쟁일 뿐이다.
법치를 책임져야 할 대의 권력이 스스로 법치의 경계선에서 전쟁의 정치를 벌이고 있다. 정부 여당은 검찰·사법·언론 개혁이라는 이른바 3대 개혁을 내걸고 있지만, 야당 국민의힘은 사법책임 방탄을 위해 헌정질서를 흔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각종 법률 제·개정에서 최근의 항소 포기 결정 논란에 이르기까지 사법리스크 방탄 전략 논란이 빠지지 않는다.
사법리스크의 내막이나 논란의 책임은 서로가 상대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무기력한 야당이 압도적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집권세력에 불리한 깔때기를 주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집권세력이 안고 있는 근원적 리스크가 배경에 있다. 여기에 무리한 방탄 전략이 사법리스크를 일상적 정치 의제로 만들고 있다. 근원적 한계에 패권의 오만이 겹친 깔때기 현상이다.
오늘의 소용돌이 정치구조에서 그나마 다양성의 공존 가능성은 권력의 리더십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국 정치가 공화와 민생이 아닌 사법리스크 논란의 깔때기로 수렴되는 현상을 극복하는 것도 집권세력이 감당해야 할 과제다. 내란청산 프레임으로 압도해 돌파하겠다는 패권 전략이 눈에 띈다. 아전인수의 선악 정치나 패권 전략은 민주공화국의 정치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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