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

얼마 전 8살 아이가 차에 매달렸다 떨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출혈이 심하고 의식이 없어 큰 병원으로 빨리 이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울 강남의 빅5 병원까지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119 구급대원들은 병원에서 환자를 데리고 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엄마, 아빠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만 병원의 허락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아이는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 신문에도, 방송에도 나오지 않은 사건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응급실 뺑뺑이’는 전국에서 발생하는 비극이다.

지난 10월 우리 의원실이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이 명확히 드러났다. 국민이 꼽은 이재명 정부의 가장 시급한 국정과제는 ‘응급실 뺑뺑이 해소’(51.7%)였다. 특히 국민 10명 중 8명(78.8%)은 응급실 뺑뺑이를 직접 겪었거나 주변인의 경험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더 이상 개인의 불편 수준이 아니라, 국민이 이 사안을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국민 인식이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 만큼, 현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1년 동안 119 구급대원이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기 위해 전화를 20통 이상 걸었던 경우가 전국적으로 1300건이 넘었다. 이들 10명 중 7명은 대부분 ‘골든타임’을 놓치면 사망확률이 높아지는 중증 응급환자였다.

그런데 선진국에는 우리나라처럼 구급대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우리 환자 받아주세요’라고 허락을 받는, 응급환자 ‘전화 뺑뺑이’가 없다. 대신 선진국에서는 병원이 응급환자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이제부터 우리 환자 못받아요’라고 응급상황센터에 미리 알리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응급실 뺑뺑이’를 없애려면 현행 응급의료법의 ‘응급환자 수용능력 확인’ 조항을 ‘응급환자 수용불가 사전고지’ 조항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하면 구급대원이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으로 곧바로 이송할 수 있어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게 된다. 또한 병원이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을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서 명확하게 정의하면 병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일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려면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도 늘려야 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병원이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한 이유 중 ‘응급환자를 진료할 의료진이 없어서’가 73%를 차지했다.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처치하고 진단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뿐만 아니라최종적으로 응급환자를 수술하거나 입원시켜 진료할 내과, 외과와 같은 배후진료과 의사들도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병원들이 응급환자를 진료할 전문의를 충분히 확충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건강보험에서 응급환자 진료비를 낮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둘째, 응급환자를 24시간 365일 진료하기 위해 병원이 어떤 과목 전문의를 몇 명이나 고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응급환자를 진료할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기준을 법으로 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 인상 및 재정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는 또다른 이유는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병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응급환자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환자를 받지 않으려 한다. 응급환자 초기진료 후 자기 병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응급환자로 진단되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켜야 하는데, 다른 병원에서도 안 받아주니 애초에 환자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지난 10월 이같은 내용을 해소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 법은 의료계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병원에게 무조건 환자를 받으라’는 법이 결코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응급의료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세계 10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의료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참담한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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