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해외주식 순매수 역대 최고… 외국인도 환전 수요 확대

경상수지 흑자 효과 상쇄될 만큼 달러 쏠림 심화

환율 1500원선 위협… 기업들 내년 경영계획 불확실성 커져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16일 서울 명동거리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올해 들어 주간 거래 종가가 1450원을 넘긴 날은 총 50일로, 전체 거래일(211일)의 24%에 달했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16일 서울 명동거리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올해 들어 주간 거래 종가가 1450원을 넘긴 날은 총 50일로, 전체 거래일(211일)의 24%에 달했다. [연합뉴스]

서학 개미와 외국인 투자자 모두 달러 자산으로 발길을 돌리며 ‘탈(脫) 한국’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이 역대급으로 불어나고, 외인까지 환전 수요를 키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위협하고 있다. 1500원은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급격한 달러 쏠림 속에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며 기업들은 내년 경영 전략 수립에 애를 먹고 있다.

고환율 장기화… ‘최약체’된 원화

16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올해 들어 주간 거래 종가가 1450원을 넘긴 날은 총 50일로, 전체 거래일(211일)의 24%에 달했다. 이달에 특히 ‘최약체’ 통화가 됐다. 이달 들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1.38% 하락했다. 새 정부 확장 재정 기대감으로 약세를 나타낸 엔화(-0.36%)보다도 낙폭이 컸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70원대까지 치솟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이는 외환위기 시기인 지난 1998년(1394.97원)보다도 높아 역대 최고다. 현 추세가 지속되면 올해 연평균 환율은 외환위기를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3.1% 오르는 동안 원·달러 환율이 6.1%나 급등하면서 국내 외환시장 불안이 확대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이날 발표한 ‘커지고 있는 외환시장 균형 이탈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 16일 1378.9원까지 하락했다가 달러 강세에 이달 11일 1463.3원으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달러인덱스가 96.6에서 99.7로 약 3.1% 올랐는데 원·달러 환율은 두 배인 6.1%나 뛰었다.

원·달러 환율 변동률은 엔·달러(4.6%), 달러·유로(-1.7%), 위안·달러(0.1%)보다도 컸다.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미국 관세 정책 리스크, 미국 통화정책 불확실성을 들었다.

해외주식 투자금, 경상수지 흑자액과 맞먹어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14일까지 국내 개인 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는 총 36억3000만달러(한화 약 5조30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1~14일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인 17억7200만달러의 배가 넘는다. 이같은 추세라면 역대치를 기록한 지난달 순매수 규모(68억1300만달러)를 크게 웃돌 전망이다.

개인들의 달러 매수 수요와 외국인의 원화 매도 수요가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을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올 1~9월 국내 법인과 금융기관 등을 포함하는 전체 내국인의 해외 주식 순매수 규모는 누적 718억4200만달러에 달해 같은 기간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경상수지 흑자(827억7000만달러)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실상 해외투자 증가가 경상수지 개선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하며 원화 약세를 구조화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국내 대기업들도 미국·유럽 투자 확대에 대비해 달러 자금을 해외에 쌓아두는 ‘달러 파킹’ 전략을 강화하면서 국내 외환 수급은 더욱 팽팽해지고 있다.

고환율 흐름은 물가에도 부담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통해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반영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환율이 2% 넘게 오르면서 10월 수입물가지수 상승 폭(전월 대비·1.9%)은 9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가 상승률이 오르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도 쉽지 않다. 한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지는 가운데, 지난주 이창용 한은 총재가 통화정책 방향 전환을 언급하면서 채권금리가 급등하는 일도 있었다.

이에 시장에선 ‘탈한국’ 흐름이 단기 현상으로 그치기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 경쟁력 확대, 기업들의 해외 생산 확대, 개인 투자자들의 글로벌 자산 선호 등 구조적 요인이 겹치고 있어서다.

추가 상승 제한 vs 1500원 터치 가능성도

전문가들은 외환 시장 안정 장치를 보완하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금 환경을 완화할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외환당국이 환율 관리에 나서면서 당분간 환율 추가 상승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 내다봤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달러 강세폭이나 주요국 통화 약세 폭 대비 원화 약세 압력이 누적된 만큼 상단에 근접할수록 레벨 부담과 함께 당국 개입에 대한 경계감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며 “1480원대에서는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나 당국의 미세조정도 나올 가능성이 있어 급격한 환율 추가 상승은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원·달러 환율이 연고점인 1480원대를 넘어 150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경우 수입 원가 상승, 해외 조달비용 증가 등 기업들의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글로벌 금리·지정학 리스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있어 환율을 중심 변수로 재조정해야 할 처지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연내 1430∼1480원 박스권을 예상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와 규제 위험이 다시 부각되면 1500원선도 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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