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진보 정권이 늘 앞세우는 것들이 있다. 약자 보호와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명분으로 진보는 포용, 분배, 권리, 평등, 공공(公共), 개혁의 가치를 강조한다. ‘경청과 통합’,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의 시작도 그랬다. 모두가 잘 살고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하는 균형성장과 공정경제 실현이란 새 정부 비전에 걸었던 기대가 컸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랬던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경청과 통합은 곧바로 독선과 분열로 치닫기 시작했다. 공정과 신뢰는 ‘내로남불’의 불공정과 불신으로, 실용과 성과는 이념과 무능으로 갈수록 변색 중이다.

걱정인 건, 이런 정책 비전 퇴색의 중심에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고, 경제를 보고 다루는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위태롭고 위험해 보인다는 거다. 서민 보호와 금융 개혁, 집값 대책 등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경제관은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시장경제의 흐름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통령실 비공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본격적인 구조개혁을 통한 국가 대전환을 지시하면서 금융기관에 대해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이른바 ‘금융계급제’가 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를 부과하는 금융권의 수익 구조를 바꿀 것을 주문하며 저신용자에 대한 여신을 ‘약탈적 대출’로까지 몰아세웠다.

앞서 9월 국무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서민 금융지원 방안을 보고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연 15%대인 최저 신용 대출자 금리를 두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대출이 더 비싸고 너무 잔인하다”며 고신용자의 대출 금리를 높이고 저신용자의 금리를 낮춰주도록 제도 개선을 주문하기도 했다.

저소득자에게 금리를 내리라는 것은 신용을 기반으로 대출금리를 정하는 금융시장 논리에 역행하는 주문이다. 또 금융기관의 이익을 저신용자에게 혜택을 주는 쪽으로 나누는 것도 해외 주주가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경영진 배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부실 대출에 따른 금융기관 재정 건전성 훼손 우려는 말할 것도 없다.

금융시장 핵심은 위험이 큰 쪽에 높은 대출금리가 부과되고 위험이 작은 쪽에 낮은 금리가 부과되는 ‘위험 기반 가격 결정’(risk-based pricing)에 있다. 이런 기본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신용평가 기능이 망가지고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이 흔들린다. 정책적 목적이 금융시장 설계에 개입할 경우 시장경제 원칙이 무너질 수도 있다.

끝내 신용도가 더 높은 이들에게 더 높은 대출금리가 적용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신한은행과 기업은행, NH농협은행 등에서 신용점수 601~650점인 차주 금리가 600점 이하 차주보다 높은 사례가 확인됐다. ‘포용의 금융’이 만든 기형이고 왜곡이다.

이재명 정부의 집값 대책도 반시장적이고 역차별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주택 매매 시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주택담보대출을 집값에 따라 정부가 일괄 제한한 것은 금융·부동산 시장의 자율성을 정부가 틀어막고, 실수요자들의 매매 선택권과 거주 이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실상은 어떤가. 정작 부동산 시장에선 정부가 그렇게나 보호하겠다던 서민·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과 전월세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하소연이 늘었다. 잡겠다는 강남 부동산 시장에선 현금 20억원은 쥐고 있어야 가능한 아파트 청약에 최근 5만4000여명이 몰렸다. 누구를 위한 대출 규제이고, 대책인가.

정권의 기조가 경제를 설계하는 순간 시장은 역할을 잃고 국민은 실험 대상이 된다. 시장경제의 자율과 시스템을 벗어나 ‘보호’와 ‘통제’로 경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건 위험한 착각이다. 그 부작용은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덮친다. 경제 정의는 선의만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시장 자율성과 시스템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지속 가능하다. 경제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로 작동한다는 단순한 진실을 정부는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

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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