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잠 건조 장소, 한국인지 미국인지 불투명

핵연료 조달·3500억달러 투자 구체성 부족

비관세 압력 전망·철강 관세 50% 못풀어

주한미군 전력 유지 언급 없어 감축 가능성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팩트시트 최종 합의와 관련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팩트시트 최종 합의와 관련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가 난항 끝에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를 공개하면서 관세·안보 협상이 일단 결론을 내렸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하다. 협상 대상에서 제외된 철강 분야와 농축산물 추가 개방 차단, 핵추진잠수함(원잠) 건조 장소 명문화 등 핵심 쟁점 상당수는 ‘다음 과제’로 남겨진 상태다.

16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관세·안보 합의 결과를 문서화한 조인트 팩트시트를 지난 14일 발표했다. 팩트시트에는 자동차 관세 15% 인하가 포함됐고 농축산물 민감 품목에 대한 추가 개방 등은 들어가지 않았다. 한미정상회담에서 테이블에 올랐던 의제가 담겨 눈에 띄는 성과가 증명됐다.

다만 눈에 띄는 부분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 관련 조항이다. 이번 팩트시트에는 원자력 협력에 대해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여기에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평화적 이용이라는 단서가 달렸다. 겉으로 보면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을 바꾸지 않는 이상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등은 불가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는 일본처럼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아도 농축·재처리를 할 수 있게 협정을 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현행 협정은 2035년까지 유효하고, 수정하려면 미국 행정부가 이에 동의해야 한다. 미 의회도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팩트시트 작성 과정에서 원잠보다 농축과 재처리 관련 내용에 대해 마지막까지 많은 논의가 됐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 내에서 반대가 상당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에 연료 조달 방안, 원잠 건조 장소에 대해서도 디테일이 빠져있다. 위 실장은 “(한미) 정상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내 건조를 전제로 진행됐다”고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도 마찬가지다. 산자부에 따르면 이는 2000억달러의 대미 투자,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투자로 구성된다. 그러나 시장 불안이 커질 경우 한국이 대미 투자금액과 시점을 조절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미국은 신의를 갖고 적절히 검토할 것” 정도의 추상적 표현만 실렸다. ‘시장 불안’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명시되지 않았으며 우리 측 요청에 대한 구체적 절차가 담기지 않았다.

팩트시트에는 전략산업 협력을 대폭 확대하면서도 쌀·쇠고기 등 농업 민감품목은 추가 개방 대상에서 제외한 내용이 담겼다. 대신 “미국 신청 건의 지연을 해소하며 미국산 원예작물 관련 요청을 전담하는 ‘US 데스크’를 설치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농업 수출입 체계가 정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관세 및 디지털 서비스 규범 협력과 관련해 양국은 온라인 플랫폼 규제, 위치정보·개인정보 이전, 디지털 유통 등에서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는데, 농식품계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유통이나 해외 수출 환경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안보 품목으로 분류된 철강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는 정상회담 때 다뤄지지 않았던 의제다. 국내 철강업계는 올해도 고율의 관세로 어려웠지만 내년 이후에는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우선 지속적인 주한미군 주둔을 통한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재차 명시했지만 현재 주한미군 병력 규모인 2만8500명을 계속 유지한다는 구체적인 명시는 없었다. 한미 국방장관이 합의한 공동성명에서도 ‘주한미군 전력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문구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표현이 빠진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새로 수립 중인 국방전략(NDS)에 따른 주한미군 감축 혹은 전략적 유연성 강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내용은 정상적인 합의라기보다 미국과 한국 간 힘의 격차를 그대로 보여준 결과”라며 “객관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합의지만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보면 핵 추진 잠수함과 핵연료 재처리 권한 등은 핵심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팩트시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명시된 점은 굉장히 긍정적”이라며 “미 연방대법원 판결에서 상호관세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커서 다음 협상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안소현·강승구 기자 ashrigh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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