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상흔 속에서 테러조직 수괴 출신 초청

한때 미국의 적…1천만달러 현상금 걸렸던 인물

美국익 기반 중동질서 재편 필요하더라도 선 넘어

“미국의 대테러 원칙은 종잇조각으로 추락했다”

美대외정책, 도덕·가치 추구보다 필요에 좌우돼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알카에다 연계 조직 수괴 출신인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가진 데에 많은 논란과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반(反)미 알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고 선거가 아닌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알샤라는 이전에는 미국으로부터 ‘극단적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1000만달러의 현상금이 붙었던 인물이다.

9·11 테러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 있는 미국 사회에서, 한때 ‘미국의 적’으로 규정돼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렸던 인물이 백악관의 손님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는 ‘극단적 외교적 안보적 실용주의적 관점’이 아니고선 설명하기 힘들다. 그만큼 미국 국민의 심중에 박힌 알카에다에 대한 이미지는 극악하다.

아무리 미국이 장기적 국익에 기반한 중동질서 재편이라는 목적이 있다손 치더라도, 알카에다 두목 출신이 미국의 심장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4차원’에 속하는 일이다.

이를 의식한 듯 백악관은 그와 트럼프 대통령 간 회담을 비공개로 했고 별도의 성명도 없었다.

알샤라는 취재진 눈에 잘 띄지 않게 백악관 측문을 통해 입장했고 별도의 환영 행사도 없었다. 이는 알샤라의 과거 이력에 대한 미국 내외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조치일 것이다.

미국이 과거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었던 알샤라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지원하려는 이유를 미국 중동 전문가들은 다음 몇 가지로 추정한다.

첫째 이란 견제와 중동 내 세력균형을 재편하기 위한 목적이다. 알샤라 정권은 이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는 달리 친미·친서방 노선을 표방하며 이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미국은 시리아와 관계 정상화를 통해 이란의 중동 내 확장을 견제하고, 새로운 중동 질서와 세력균형을 구축하려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 시리아를 이란의 ‘맹방’에서 ‘친미’ 국가로 전환시키는 것은 이란 고립 전략에 큰 도움이 된다.

둘째 대테러 협력 강화다. 알카에다를 끌어들임으로써 테러조직 ‘IS’(이슬람국가)를 누른다는 전략이다. 즉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알샤라가 이끄는 단체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은 과거 알카에다와 결별한 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와 싸워왔다. 실제로 2019년 미군이 IS 수장 알바그다디를 사살한 작전도 알샤라의 근거지 인근에서 이뤄지는 등 IS는 미국과 알샤라에게 공동의 적이다. 알샤라와의 협력은 미국의 대테러 전략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셋째 시리아 재건과 인도주의 회복이 미국에도 나쁠 게 없다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시저법’(시저 시리아 민간인 보호법‧Caesar Act)에 따른 제재 부과를 18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이는 오랜 내전과 제재로 폐허가 된 시리아의 재건을 지원하고, 인도주의적 위기를 완화하며, 시리아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시리아 안정이 장기적으로 중동 지역 전체의 안정에 기여한다면 현 체제에서 미국에 손해될 게 없다는 것이다.

넷째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랄 수 있는 ‘극단적 실용주의’(Realpolitik)를 들 수 있다. 미국은 알샤라가 시리아를 완전히 장악하고 임시 대통령 자리에 오른 현실을 인정하는 것을 선택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추가적 비용 지출을 아끼고 실용적 이익을 취하겠다는 극단적 실용주의 노선이다. 알샤라가 과거 알카에다 연계 조직의 수괴이었지만 알카에다 본부와 공식적으로 관계를 끊고 현실 정치 지도자로 변신했다는 점을 애써 부각시키는 이유다.

이러한 알샤라를 둘러싼 ‘기괴한 정황’을 반영하듯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 그를 인터뷰했다.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알샤라 대통령은 시리아의 상황을 미국 남북전쟁에 빗대거나 자신의 개인사를 소개하며 미국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려는 모습이었다.

WP도 기사 제목을 ‘시리아 대통령, 한때 맞서 싸운 미국과 협력하기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다’였다. 알샤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시리아와 미국의 관계 구축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안보 이익과 경제적 이익 등 우리가 구축할 수 있는 많은 공통된 이익이 (시리아와 미국 사이에)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리아의 안정은 중동 전체의 평화와 연결돼 있고, 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 발전과 연결돼 있다”며 “우리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에 쏙 들 답변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알샤라를 “젊고 매력적인 터프가이”라고 추켜세우며 “힘든 과거가 없다면 기회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이미 닥친 현실은 어쩔 수 없고, 중동에서의 힘의 투사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급조한 변명거리(시리아 안정=미국 국익)까지 있으니 과거를 덮자는 의미일 것이다. 흔한 말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타협이다.

미국은 알샤라의 초청과 때를 같이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알샤라 대통령에 가했던 유엔 제재도 해제하도록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이제 도덕적 잣대나 이념 추구보다는 전략적 필요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극단적 실용주의’의 선언이다.

외교는 단순히 선악 기준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이뤄질 수도 없다. 그러나 알샤라 케이스는 미국의 가장 근본 가치의 훼손으로까지 지적된다. 모든 인간은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존재한다는 건 미국 건국과 헌법의 정신이다. 그럼에도 얼마 전까지 반미 구호 아래 테러를 일삼았던 조직의 수괴를 안방으로 끌어들여 악수를 하는 모습은 근본을 흔드는 일이다.

더욱이 알샤라 집권 후에도 시리아에서는 여전히 기독교인에 대한 종교적 폭력과 소수민족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알샤라가 알카에다와 공식 결별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력은 여전히 무장단체의 통제 아래 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출신의 한 인사는 “테러리스트였던 인물을 국가정상으로 대우한다면, 미국의 대테러 원칙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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