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부르던 풍자 노래 ‘히틀러는 한 개의 볼만 갖고 있다(Hitler has only got one ball)’는 단순한 선전가요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영국 채널 4(Channel 4)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Hitler’s DNA: Blueprint of a Dictator’가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13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진은 히틀러의 DNA를 분석한 결과, 그가 ‘칼만증후군(Kallmann Syndrome)’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질환은 성기 발달 이상, 낮은 테스토스테론 수치, 그리고 후각 상실 등을 특징으로 하는 유전 질환이다.

포츠담대 역사학자 알렉스 카이(Dr. Alex Kay)는 “히틀러가 평생 여성과의 친밀한 관계를 피했던 이유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며 “하지만 이번 분석은 그 행동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히틀러의 시신은 자살 직후 불태워졌지만 그의 혈흔 일부가 보존돼 있었다. 연구팀은 이 혈흔에서 DNA를 추출해 약 80년 만에 분석에 성공했다.

연구진은 덴마크 아르후스대(Aarhus University)의 정신유전학자들과 함께 히틀러의 정신적 특성을 유전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그는 ADHD와 자폐증, 양극성 장애, 조현병의 위험도가 모두 인구 상위 1%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 히틀러는 평소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동거인이었던 여성들과도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증언이 다수 존재한다. 그의 주치의였던 테오도어 모렐(Dr. Theodor Morell)의 진료기록에는 히틀러에게 정기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투여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연구진은 이를 칼만증후군의 증상 치료로 추정했다.

핀란드 투르쿠대(Turku University) 전문가들은 이 증후군을 가진 환자 중 약 10%가 발달이 미비한 성기를 가지거나, 고환이 정상적으로 내려오지 않는 증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는 히틀러가 병사 시절 동료들로부터 신체적 놀림을 받았다는 일화와도 맞물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신체적 결함과 정신적 불안이 히틀러가 집착했던 ‘우생학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유전적 ‘결함’을 가진 사람이 인종의 ‘순수함’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역설적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연구에 참여한 한 과학자는 “히틀러가 자신의 DNA를 직접 볼 수 있었다면, 그가 스스로 만든 우생학 법에 따라 가장 먼저 제거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번 다큐멘터리의 DNA 분석 결과는 히틀러의 폭력성과 광기 이면에 숨겨진 생물학적 요인을 보여주지만, 그의 역사적 책임을 덜어주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그의 유전적 특성은 이해를 돕는 정보일 뿐, 선택과 행동의 책임은 오롯이 그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히틀러 자료사진. 연합뉴스
히틀러 자료사진. 연합뉴스
양호연 기자(hy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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