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도 례, 옳을 의, 청렴할 렴, 부끄러울 치. 예(禮)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절제, 의(義)는 옳고 그름의 분별, 염(廉)은 탐욕을 경계하는 마음, 치(恥)는 부끄러움을 아는 양심이다. 이는 인간과 사회를 지탱하는 덕목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예의와 염치를 잃은 사람을 ‘파렴치한’(破廉恥漢)이라 불렀다. ‘후안무치’(厚顔無恥), ‘몰염치’(沒廉恥) , ‘철면피’(鐵面皮)등도 이와 비슷한 말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이 쓴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에서 유래했다. 목민편에 ‘禮義廉恥 是謂四維’(예의염치 시위사유)라는 구절이 나온다. ‘예의염치, 이것이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네 가지’라는 뜻이다. 관중은 “예의염치 가운데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끊어지면 위태로우며, 셋이 끊어지면 전복되고, 넷이 모두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맹자(孟子)도 인간이 짐승과 다른 이유를 ‘예의염치’ 네 글자로 압축했다. 맹자는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예의염치’는 한 나라의 기강이자 공동체의 근본질서다. 그중 한 가닥만 풀려도 나라는 흔들린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 이 네 덕목 중 몇 개가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정치가들은 품격과 도리를 잊었고, 공직자들은 국민을 위한 청렴을 저버렸으며, 지도자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예의염치가 떠난 자리에는 계산과 이익만이 남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화급하게 회복해야 할 것은 GDP 성장률이나 지지율이 아니다. ‘예의염치’라는 최소한의 도덕심이다. 이것이 살아 있을 때만 공정은 힘을 얻고, 정의는 설득력을 가진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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