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서울시 서울의료원장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된 루스벨트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 해군 차관보로 일했다. 그런데 1921년 8월 별장에서 가족들과 요트로 여행을 하면서 수영을 즐기던 도중에 갑자기 고열과 오한에 시달렸다. 다음날 아침에는 오른쪽 무릎에 힘을 줄 수 없었고 왼쪽 무릎도 마비됐다. 하루 뒤에는 완전히 일어날 수 없었으며 38.9도의 고열이 지속됐다. 그 다음에는 가슴 아래쪽이 마비되었고 엄지손가락도 자유롭지 않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었다. 보스턴에서 ‘로베트’라는 의사가 오면서 척수성 소아마비로 진단됐다. 당시에는 소아마비가 소아는 물론 면역이 약한 성인들에게도 잘 걸리는 질환이었다. 특히 위생 상태가 좋고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어른들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얻을 기회가 적어 더 위험했다.

결국 그 다음해에는 허리에서 발까지 깁스를 해야만 했다. 그 후 몇 년간에 걸쳐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재활 훈련을 한 덕분에 부축없이 힘겹게 걸을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됐다. 그의 노력을 지켜본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다시 정계에 복귀할 수 있었다. 1924년에는 뉴욕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팀목에 의지하여 연단까지 스스로 올라가 엘프리드 스미스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는 연설을 하여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1928년 뉴욕 주지사로 당선됐고, 2년 후 큰 표 차이로 재선이 됐다. 그리고 1933년 미국 대통령이 된 루즈벨트는 국립 소아마비 재단을 설립하여 백신 개발을 적극 지원했다. 소아마비는 1916년 뉴욕 전체 인구 560만명 중에서 9300명이 걸려 2200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었다. 그러나 재단의 후원으로 백신이 개발되어 1952년에만 20만명의 어린이에게 투여하면서 소아마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고혈압과 협심증이 지속되면서 건강은 서서히 악화되었다. 1944년 봄에는 두 달에 걸쳐 계속 기침을 했는데, 이는 폐가 아닌 심부전으로 인한 기침으로 판단된다. 그의 건강을 걱정한 친구들은 대통령 출마를 반대했으나, 그를 대체할 만한 후보자가 없었던 민주당에서는 결국 다시 대통령 후보로 지명해서 4번째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1944년 5월 그는 베데스다병원에서 심장이 극도로 비대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는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부전을 앓고있다는 의미다.

1944년 11월에는 혈압이 180/100까지 올라갔으며 호흡 곤란으로 반듯이 누울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5년 2월 크림반도까지 가서 얄타회담에 무리하게 참석했다. 대통령은 여위고 초췌한 모습이었고 뇌동맥경화의 증상도 나타나는 등 이미 정상적인 건강 상태가 아니었다. 스탈린은 이를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회담을 지루하게 끌고 갔다.

얄타회담에서 돌아온 다음 루스벨트는 웜스프링스 온천에서 한 달간 휴양하면서 조금씩 좋아졌지만 4월 12일 1시 20분경 점심을 기다리며 농담을 하다가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3시 35분에 사망했다. 사인은 광범위한 뇌출혈이었다.

그의 부고를 접한 처칠은 눈물을 흘리면서 미국 특파원에게 “언젠가 이 세상과 역사는 당신네 대통령에게 큰 신세를 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국민과 연합군 사령관들의 큰 슬픔과 애도 속에서 장례가 치뤄졌다.

루스벨트의 죽음을 계기로 해서 1948년 미국 의회에서 국민심장법이 통과되어 심장연구소가 세워졌다. 그 덕분에 심장병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지금은 상식이지만 당시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고혈압, 흡연, 콜레스테롤 증가, 당뇨병 등이 심장병의 위험인자라는 것을 밝혀내어 심장병 예방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이 연구의 방식은 다른 학술 연구에서도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살아서는 소아마비 백신의 개발에 기여했고, 죽어서는 심장병의 원인을 밝혀내어 예방에 기여했다. 그는 정치뿐만 아니라 의학 분야에도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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