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준호 부국장 겸 IT바이오부장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에 ‘피지컬 인공지능(AI) 1등 도약’이란 목표가 들어있는 걸 보고 당시엔 이게 뭐지 싶었다. 지난 4월에 출범해 AI 세계 3대 강국이란 비전을 제시한 지 몇달이나 지났다고 피지컬 AI 세계 1위라는 또 다른 목표가 나왔단 말인가.
게다가 피지컬 AI는 ‘궁극의 AI’라고 불린다. AI가 컴퓨터 속에서 언어로 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3차원의 공간에서 인간 대신 판단하고 노동하는 단계, 그야말로 인류가 AI에게 원하는 최고의 경지가 바로 피지컬 AI다.
무리한 구호로 보였던 정부의 목표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하면서 실현 가능한 비전으로 바뀌었다. 황 CEO는 앞으로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을 한국에 공급하겠다고 했다. 한국의 기존 보유량(약 5만장)의 다섯배다. 이 물량을 정부 5만장,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 각각 5만장, 네이버가 6만장씩 나눠 사는데 이들 모두 이 GPU를 이용해 피지컬 AI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황 CEO는 웃돈을 주고도 사기 어렵다는 GPU를 왜 한국에 26만장이나 공급한다고 했을까. 그건 바로 ‘엔비디아가 꿈꾸는 피지컬 AI를 한국이 실현시켜달라’는 뜻이다. 그 메시지를 세계의 엔비디아 투자자와 미래의 경쟁자들에게 드러내고자 한국 최대기업의 총수들과 치킨을 먹고 러브샷을 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언어모델을 훈련시키는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 가능하지만 피지컬 AI를 위한 훈련에는 제조업이 필요하다. 실제 공장이나 산업현장을 디지털 트윈으로 만든 뒤, 실제 현장에서 나온 데이터를 투입해 피지컬 AI를 훈련시켜야 한다. 때문에 제조업이 강하고 폭넓은 나라만이 이런 데이터를 확보해 피지컬 AI를 훈련시킬 수 있다.
제조업 세계 1위는 중국이다. 젓가락부터 전투기, 항공모함까지 만든다. 모든 제품을 가장 많이, 가장 싸게, 가장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황 CEO도 피지컬 AI의 꿈을 구현할 최고의 파트너가 중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중의 정치 현실상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한국이다. 황 CEO가 이번 방한에서 “한국은 피지컬 AI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고 말한 것은 이를 의미한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일 뿐만 소프트웨어(SW) 산업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넘치고 신산업에 투자할 투자자도 많다. 여러 모로 피지컬 AI를 발전시키기 좋은 환경이다.
지금까지 엔비디아의 성공은 시대를 잘 만난 측면이 컸다. 컴퓨터용 그래픽카드를 만들었는데 게임산업이 성장하면서 고성능 제품 수요가 폭발했다. 이후엔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사람들이 그래픽카드를 싹쓸이했다. 다음엔 자동차 자율주행 연구하는 사람들이 GPU를 쓰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오픈AI와 같은 대형언어모델(LLM) 중심 AI 기업들이 GPU를 경쟁적으로 빨아들이면서 엔비디아는 현재 세계 시총 1위 기업이 됐다.
앞으로 엔비디아는 피지컬 AI 붐을 일으켜 GPU 수요를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모델과 로봇까지 포괄하는 피지컬 AI 생태계를 이끌고 싶어한다. 황 CEO의 자녀들이 모두 피지컬 AI 분야에서 일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물론 피지컬 AI 구현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모델의 실수는 사람이 다시 확인하면 되지만 산업현장에서 AI가 실수하면 이는 곧 사고·불량·손실로 이어진다. 마지막 0.1%까지 오류 없이 완전무결해야 하기에 대단히 어려운 도전이다.
그렇지만 어려움을 뚫고 엔비디아와 함께 피지컬 AI를 선도 구현한다면 K-피지컬 AI가 세계 표준이 된다. 아울러 피지컬 AI가 탑재될 로봇과 모빌리티, AI 가전산업 등도 한국에서 꽃을 피울 것이다. 여러가지 우연과 필연이 겹쳐 한국에 진짜 ‘찬스’가 왔다. 몇백년만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할 기회다. 이제 구호가 아니라, 피지컬 AI 세계 1위를 향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써나갈 때다.
맹준호 부국장 겸 IT바이오부장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