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 부처 소관 346개 경제법률

91.6%는 위반자·법인 동시처벌

담합 합의 추정땐 4중제재 가능

과중 규제에 기업 성장포기까지

한국경제인협회 제공
한국경제인협회 제공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D사 대표는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한 한 업계 간담회에서 “최근 알루미늄 가격이 오르다 보니, 납품단가를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들도 같은 자리에서 이 같은 어려움을 공유하며 가격 조정이 불가피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당 발언과 회의록을 근거로 담합 정황을 발견했다며 조사를 착수했다. 단지 업계의 고충을 호소하고 의견을 나눈 것 뿐인데, 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말 한 마디에 징역(최대 3년)과 벌금(최대 2억원),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국내 기업들이 단순 행정업무를 포함한 경영 활동 과정에서 무려 8000개가 넘는 항목의 형사처벌 제재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20년 새 반토막이 난 상황에서 수천개의 규제까지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기업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글로벌 기준에 맞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가 10일 공개한 ‘경제법률 형벌 조항 전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활동과 관련성이 높은 21개 부처 소관 346개 경제법률에서 총 8403개의 법 위반행위가 징역·벌금 등 형사처벌 대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7698개(91.6%)는 양벌규정이 적용돼 법 위반자뿐 아니라 법인도 동시에 처벌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 위반행위에 대해 ‘징역 또는 벌금’을 포함한 두 개 이상의 처벌·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항목은 2850개(33.9%)로 조사됐다.

일례로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사업자 간 가격·생산량 등의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만으로도 담합 합의로 추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징역과 벌금이 병과될 수 있으며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더해지면 최대 4중 제재가 가능하다.

또 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기업은 매년 특수관계인 현황, 주식 소유 현황 등 지정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미제출 또는 허위 제출할 시 최대 징역 2년 또는 벌금 1억5000만원의 벌금에 처한다.

한경협은 기업 실무자의 단순 업무 착오, 친족의 개인정보 제공 거부 등 의도치 않은 자료 누락도 형사처벌로 규율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다고 지적했다.

대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경쟁법상 담합,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중대 위반에 한정해 형사처벌을 운용하고 있어, 현행 규정은 글로벌 기준과 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이 같은 과도한 규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성장 엔진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날 발표한 ‘매출액 1000대 기업의 20년 수익성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의 총자산 영업이익률은 2004년 4.2%에서 지난해 2.2%로 반토막 났다. 자산 1억원을 기준으로 2004년 평균 420만원의 수익을 남겼던 기업들이 지난해에는 220만원 밖에 못 벌었다는 의미다.

대한상의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먼저 기업규모에 따른 역진적 인센티브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성장과 수익을 이뤄내는 기업에 리워드(보상)를 주는 방식으로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계단식 규제가 기업 성장을 스스로 옥죄는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기업의 자산규모가 커짐에 따라 공정거래법 등 규제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김영주 부산대 교수팀은 공정거래법 등 12개 법률에서만 343개의 계단식 규제를 찾아낸 바 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기업이 계단식 규제 때문에 스스로 성장을 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선택하는 모순이 사라질 수 있도록 기업성장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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