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융합연구단 단장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나라다. 프랑스는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전환하는 데 115년, 일본은 24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단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게다가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12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하였다. 2017년 고령사회 이후 7년 만이다. 2022년 기준 기대수명은 82.7세, 건강수명은 65.8세로 그 차이가 17년에 달한다.
이는 의료기술 발전으로 수명은 늘었지만, 상당 기간을 질병 상태로 보내고 있음을 뜻한다. 급격한 고령화로 2023년 노인의료비는 48조9000억원으로 전체의 44%를 차지했다. 건강문제로 일하지 못하는 노인인구 증가는 복지 지출을 늘리며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오랫동안 노화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으로 여겨졌지만, 21세기 들어 노화를 ‘진단하고 치료 가능한 현상’으로 보는 인식 전환이 일어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국제질병분류(ICD-11)에 노화(Old age)에 질병코드(MG2A)를 부여하며 예방과 치료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많은 연구자들은 노화를 고혈압, 암, 당뇨, 치매 등 모든 노인성 질환의 선행질환으로 본다. 개별 질환을 치료하기보다 노화를 조기에 진단·조절함으로써 여러 질환을 동시에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국은 대규모 항노화 연구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2019년 노화 지연물질 메트포르민(Metformin)의 효과를 검증하는 FDA 승인 임상시험 TAME을 시작했고, 구글은 칼리코(Calico)를 설립해 인류 수명 연장을 목표로 연구 중이다. 메이요클리닉은 노화세포 제거 약물 (Senolytics) 임상을, 알카헤스트(Alkahest)는 젊은 혈액 단백질을 이용한 치매 치료를 수행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헤볼루션(Hevolution) 재단을 통해 매년 10억달러 규모를 항노화 연구에 투자한다. 이처럼 노화 연구는 세계적 전략 투자 분야로 부상했다.
우리 정부도 항노화·노화극복 연구를 국가 전략과제로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1년 과학난제해결형사업에 노화과학을 핵심 도전 과제로 선정했고, 제4차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2023~2032년)에서도 ‘노화 진단 및 제어 기술’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국내 투자는 여전히 기초연구 중심이다. NTIS 분석에 따르면 항노화 정부 과제의 70% 이상이 기초단계에 머물고, 민간 투자와 기업 참여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은 국가 전략 대응의 중심축으로 ‘노화융합연구단’을 설립하고, 이어 노화 전문연구소를 신설했다. 연구단은 노화를 진단·지연·치료의 세 축으로 통합 관리하는 기술개발을 추진 중이다. 진단 분야에서는 후성유전학 기반의 DNA 메틸화 시계(Epigenetic aging clock)를 활용해 생물학적 노화를 정량화하고, 치료 분야에서는 노화조절 단백질과 노화세포 제거, 줄기세포 역노화 기술을 연구한다. 지연 분야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접목해 생활 속 노화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들이 연계되면 국민건강검진에 생체 노화 진단 항목이 포함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맞춤형 노화 예방이 가능해질 것이다.
노화 연구는 단순한 생명과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할 국가 전략이다. 질병 발병 후 치료에 막대한 비용을 쓰기보다 노화를 조기에 관리하는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즉, 노화를 늦추는 것이 모든 질병을 늦추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 노화 R&D를 미래 핵심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노화융합연구단이 그 출발점이며, 노화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기술 발전이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해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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