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정치평론가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이는 아군인가 아니면 적군인가. 공식적인 위치를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아군 관계다. 이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이고, 집권 여당의 대표는 대통령을 지원하고 보좌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니 누구보다 더 끈끈한 협력 관계여야 한다.
그러나 최근 동향을 보면 아군 사이라고 말하기 힘든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첫 번째 단서는 ‘재판중지법’이다. 정 대표가 이끌고 있는 민주당은 대통령의 중요 행사인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이 끝나자마자 ‘재판중지법’의 깃발을 올렸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부터 민주당은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정법’, ‘국정보호법’, ‘헌법 84조 수호법’으로 호칭하겠다”며 “이제 사법 개혁 공론화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라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이 중요한 당의 의사 결정과 관련된 사안을 대표와 상의 없이 발표했다고 보기 어렵다. 당은 강력하게 ‘재판중지법’을 추진하는 입장이었지만 대통령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무리하게 법안 처리를 하지 말라”는 뜻을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통해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정 대표를 향한 일종의 경고다. 여권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도 온라인상에서 “이 대통령의 호재가 있을 때마다 정 대표가 찬물을 끼얹는다”고 비판했다. 이쯤되면 이 대통령과 정 대표 사이는 더 이상 아군이 아니다.
또 하나의 단서는 부산시에서 발생했다.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경선에서 컷오프 된 유동철 부산 동의대 교수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유도 명분도 없는 컷오프는 독재”라며 “정청래 대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결자해지하라”고 했다.
유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인재 영입한 인사였다. 민주당은 지난 10월 27일 부산시당위원장 후보 4명 중 유 교수 등 2명을 컷오프하고 나머지 2명만 경선을 치르게 했다. 통상적으로 경선 후보자가 4명이면 컷오프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명백한 결격 사유가 없는 이상 그대로 경선을 실시하고 상위 두 명만 가려 필요한 경우 결선 투표를 진행하면 될 일이다.
유 교수는 당 지도부를 향해 후보 면접 진상 파악과 해명, 조강특위 면접을 담당한 문정복 조직사무부총장의 사퇴 등을 요구했다. 더 나아가 정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유 교수의 정치적 선택이 ‘친명’이라고 한다면 친명 인사가 정 대표에게 반기를 든 셈이다.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다.
지지율 차원에서도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엇박자다. 4개 여론조사 기관(케이스탯리서치, 엠브레인퍼블릭,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한국리서치)이 자체적으로 지난 10월 27~29일 실시한 NBS여론조사(전국 1001명 무선가상번호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16.7%,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의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56%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39%다. 무려 17%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대통령의 국정 긍정 지지율이 훨씬 더 높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서 더 올라갈 수 있는 대통령 긍정 지지율을 정 대표의 강공 정당 정치가 끌어내리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올 정도다. 임기 초반 이 대통령을 지지했었던 2030 MZ세대, 주부층 그리고 학생층들이 많이 이탈한 분석 결과를 근거로 이 대통령과 정 대표 사이의 ‘노 브로맨스’(형제 같은 가까운 사이가 더 이상 아니라는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견제와 협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여당 대표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면서도 동시에 당의 독립성을 지키고 민심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결국 바람직한 관계는 ‘충성’보다 ‘소통’이 중심이 되는 관계다.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하되 당 대표가 정치적 현실감각과 현장의 목소리를 보완해주는 구조라면 가장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 사이가 아군일지 적군일지는 오롯이 두 사람의 의지와 태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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