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진 산업부 재계팀장
“모든 기업들에 일률적으로 정년 연장을 적용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고용 양극화만 더 심화될 수 있다.안 그래도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은 인건비 압박에 더 시달릴 수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2033년까지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시대적 과제로 연내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한 재계 관계자는 이같은 우려를 전했다.
그는 정부가 청년 일자리 채용을 강조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전환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맞물릴 수 있을 지에 물음표를 달았다. 이들 간 조화가 어렵다면 결국 기업들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대부분 기업들은 연공형 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즉 근속 연수가 길거나 연령이 높아지면 봉급은 물론 고정비도 늘어나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 1명의 정년이 4~5년 길어지면, 그 기간 동안 청년 채용 여력은 1명이 아닌 그 이상 위축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SK, 현대차,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두 달여 전인 지난 9월, 연간 4만~4만5000명 수준의 초대형 청년 일자리 채용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기업들의 노력을 주문하자 이에 발을 맞췄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정부의 청년 일자리 의제에 대한 화답에도 정년 연장 이슈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기에 AI 전환도 채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최근 성공적으로 끝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25’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6만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한국 정부와 기업에 풀기로 한 것이 하이라이트였다.
골자는 AI 제조 혁신이다. 이 대통령도 APEC 2025 이후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안’이라며 ‘AI 3강’ 의지를 피력했다. 사실 AI 제조는 고용 확대의 반대편에 놓여 있다. 첨단 로봇과 제조 설비가 사람을 대체해 효율성과 생산 속도를 높이고, 관리 또한 AI 솔루션이 대신하면 인력의 필요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제조현장뿐 아니라 사무 행정에서도 AI가 도입되면서 단순·반복 업무를 이로 대체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미국 아마존의 경우 AI 도입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전체 사무직의 10% 수준인 3만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구글은 지난 8월 전사 회의에서 1년 전보다 팀 관리자(매니저)를 35% 줄였다고 전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올 상반기 6000여명 규모의 해고 계획을 밝혔다.
노사 관계에서 이상적인 그림은 여러번 나왔지만, 항상 정답이었던 건 아니다. 일자리 창출 모델을 만들거나 하도급법에 맞춰 하청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자, 이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본사 지원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파업은 결국 셧다운(일시 가동중단)으로 이어지고 내수, 수출에 악영향을 미쳤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현재 정년 연장이 화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현 63세에서 2033년 65세로 상향되면 소득공백 기간도 늘어나 이를 메우는 방안도 필요하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과 AI 제조 전환이라는 흐름을 감안했을 때, 정년 연장은 보다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년 연장이 필요한 사업장은 노조가 강한 대기업보다 고용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으로, 이들에 대한 고용 지원이 우선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년 연장이 정말 필요한 기업이라면 노사 단체협상을 통해 이를 조정할 수 있다. 정년 연장이 가장 필요한 사업장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책이 무엇인지 먼저 들여다보고 우선순위를 따져볼 때다. 일률적 기준보다 현장의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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