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대외금융자산 7배↑·NFA 역대 두 번째
전문가 “투자 매력 잃으면 자금조달 취약”
우리나라의 순대외금융자산이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했다. 경상수지 흑자 행진에 국내 기업·기관투자의 대외 투자가 증가한 때문이다. 여기에 서학개미까지 가세했다. 이에 따라 대외 건전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투자금의 '코리아 엑소더스'로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돈이 말라가고 있다. 최근 정부가 미국과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까지 추진하면서 '국내 자산 고갈'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순대외자산 안정화 가능성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우리나라의 순대외자산(NFA)은 1조304억달러(약 1493조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5.7% 수준에 달했다. 이는 연간 기준으로 지난해 말(58.8%)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순대외자산 증가는 경상수지 흑자가 해외투자로 이어진 결과다. 2000년대 이후 누적 경상흑자 약 1조1539억달러 중 상당 부분이 해외 순투자로 전환되며 국내 자금보다 해외자산이 빠르게 늘었다.
특히 지난 20년간 대외금융자산은 2조7000억달러로 7배 이상 증가한 반면, 대외금융부채는 1조6000억달러로 3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국내 기업과 기관투자가의 해외 투자(대외금융자산)가 외국인의 국내 투자(대외금융부채)보다 더 많이 증가하면서 순대외자산이 빠르게 확대된 것이다.
이희은 한은 해외투자분석팀 과장은 "우리나라 NFA는 2010년 이후 대외금융자산이 부채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꾸준히 증가하였다"며 "NFA 확대는 경상수지 흑자 누적에 따른 해외순투자 증가에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NFA 확대가 대외 건전성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가지지만, 자본의 해외유출이 지속되면서 국내 자본시장 투자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순대외자산이 늘수록 환율 약세 압력이 커지고, 글로벌 리스크나 통상 불균형에 대한 노출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외환보유액과 은행부문이 중심이던 대외자산 구조가 최근 들어 민간·기관투자가 중심으로 이동하며, 경상흑자로 유입된 외환이 다시 해외투자로 빠져나가는 흐름이 강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대미 투자 결정은 해외 자산의 역외 순환을 더욱 고착화할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최근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 중 2000억달러는 현금 투자로 진행되며, 연간 투자 상한은 200억달러다. 이 자금은 새로 조달되는 국내 자금이 아니라 이미 해외에 축적된 자산의 운용수익으로 충당될 계획이다.
문제는 이 같은 자금이 국내로 환류되지 못한 채 해외에서만 순환하면서, 실질적으로 국내 투자 여력을 회복할 기회를 줄인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이 국내 기업 투자나 금융시장으로 유입되지 않고 다시 해외로 재투자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국내 자금 순환 구조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건 상징적으로 '돈이 해외에 머물러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미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자금이 다시 해외로 순환하는 구조가 되면, 장기적으로는 국내 자본시장과 환율 안정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해외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더라도 국내 시장의 투자 매력을 높여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해 2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을 시행한 이후 35년 만에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국내에서 투자할 만한 여건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국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면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과 제도적 매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해외에 투자된 자산도 결국 우리 자산이지만, 국내 자금이 빠르게 줄어드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며 "국내 자본시장이 투자처로서 매력을 잃으면 외형상 채권국임에도 자금조달 여건은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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