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신용 세종본부장

1990년대 중반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이 발효되자 농심은 들끓었다. 쇠고기 시장 개방으로 값싼 수입 고기가 대량 유입되면서 축산 농가는 곧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시장 개방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격 경쟁 대신 ‘고급화 전략’을 병행하는 계기가 됐다. 국가 차원의 개량 정책과 연구개발(R&D)이 집중되면서 고급육 생산·유통 체계가 확립됐다. 한우는 3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K-브랜드 중 하나로 우뚝 섰다.

그 결실 중 하나가 중동 진출이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30일부터 아랍에미리트(UAE)에 최초로 한우 수출을 시작했다. 19억 할랄 시장에 정식 진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수출 국가는 기존의 홍콩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를 포함 총 5개국으로 늘어났다. 고소득 국가이면서 쇠고기 소비량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UAE에 대한 수출 물량은 약 1.5톤이다. 호주·미국으로부터 수입 비중이 높고, 고품질 쇠고기 수요가 커 향후 한우 수출의 중요한 국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비결은 뭘까? 무엇보다 한우의 유전 능력 개량과 정밀 사양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품질 수준을 정교하게 높인 데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생체중이 31.4% 증가하고, 근내지방도(마블링)가 33% 향상되는 등 맛과 식감·색감이 균일해졌다. 6개월 령의 경우 체중이 144.7kg에서 157.7kg으로 9.0%, 생체중은 575.5kg에서 756.3kg으로 31.4% 각각 증가했다. 마블링은 3.62에서 5.10으로 40.9% 개선됐다. 성장 단계별 영양 관리와 사양기술의 정밀화가 품질 고급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농진청의 설명이다.

‘한우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31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마련된 한우 직거래 장터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우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31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마련된 한우 직거래 장터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은 한우 품질혁신을 위해 유전능력 개량과 맞춤형 사양기술 고도화, 체계적 품질관리 세 축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을 추진해 왔다. 1993년부터 한우 개체의 형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유전능력 평가체계를 구축했고, 90년대 말 한우고기 품질 고급화를 위한 개량 체계로 전환했다. 2017년에는 유전체 정보를 활용한 씨수소 선발 기법을 도입해 평가 정확도를 5~11%포인트 높였다. 암소는 효과가 더 컸다. 유전체 정보를 활용해 유전능력 예측 정확도를 20%포인트 끌어올리면서 연간 1130억원 대의 경제적 효과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실은 31일 경주 APEC 정상회의 공식 환영 만찬을 공개했다. 이번 만찬은 한국계 미국인 셰프 에드워드 리가 개발에 직접 참여했다. 왼쪽부터 갈비찜, 나물비빔밥, 파이·캐러멜 디저트.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31일 경주 APEC 정상회의 공식 환영 만찬을 공개했다. 이번 만찬은 한국계 미국인 셰프 에드워드 리가 개발에 직접 참여했다. 왼쪽부터 갈비찜, 나물비빔밥, 파이·캐러멜 디저트.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이렇게 재탄생한 한우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경북 경주시 브랜드인 ‘천년한우’가 환영 만찬으로 제공된 뒤 다시 한 번 이름을 날렸다. 각국 정상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불고기만 알던 외국 관광객들이 ‘천년한우 투 플러스’를 찾는 계기가 됐다. 천년한우는 경주축협이 만든 지역 자체 브랜드로 2006년부터 그 맥을 이어왔다. 소가 충분히 자랄 때까지 화식 사료를 먹이면서 키우기에 감칠 맛이 풍부하다. 현재 경주지역 1310호에서 4만5000두를 사육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지역경제 활성화 성과까지 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앞으로 탄소중립 실현 등으로 지속가능한 축산업 기반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여기에 농림축산식품부는 해외 한우 잠재고객 발굴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기술력과 홍보, 마케킹이 삼위일체가 된다면 K-한우의 미래는 더욱 밝다. 가뜩이나 산업별로 극심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불확실성의 시기다. 보호무역에 관세 전쟁으로 통상 환경이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딛고 도약한 한우 산업은 어려움을 겪는 다른 산업에도 여러 시사점을 준다.

송신용 세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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