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신라 금관’을 선물받았다. 외교적 기념품이지만, 묘한 상징성을 품고 있다. ‘왕이 되고 싶어하는’ 대통령에게 ‘왕관’을 건넸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무궁화대훈장을 수훈한 뒤 신라 금관 모형을 선물로 받았다. 이는 지난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의 복제품이다. 국보 188호 천마총 금관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금관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관을 선물받으면서 “정말 아름답다, 특별하다”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영국 더 미러에 따르면 보디랭귀지 전문가 주디 제임스는 “트럼프는 금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그것을 쓰는 장면을 상상하는 듯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황금빛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듯, 금관을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실으라고 지시했다. 정상 간 선물은 통상 외교 경로를 통해 나중에 전달되지만 그는 “직접 가져가겠다”고 했다. 더 일찍 가져가기 위해 이 같은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금관을 백악관 집무실 어디에 전시할지도 이미 정해놨다고 한다.
그의 이런 반응은 지금 미국 전역을 벌어지고 있는 ‘노 킹스’(No Kings) 시위와 맞물리며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노 킹스’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 집회다. 신라 금관을 쓴 트럼프 대통령의 밈 영상도 온라인에서 확산 중이다. 영상에는 금관을 쓴 트럼프 대통령이 하얀 왕관을 쓴 멜라니아 여사와 춤을 추고, 주변 인물들은 이를 보며 박수를 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트럼프는 ‘왕이 되고 싶어 하는 대통령’이다. 재집권 이후 그의 행보를 보면, 이미 그는 절대 권력자다. 장관과 참모들을 ‘조언자’가 아닌 ‘명령 수행자’로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권력 집중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개 내각회의를 보면, 장관들은 “당신의 리더십 아래”(Under your leadership)라는 말을 의례적으로 반복한다. 내각 회의는 사실상 ‘충성의 무대’가 됐다.
나아가 그는 국방부는 물론 재무부, 법무부, 그리고 연준까지 ‘직접 통제’를 노골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언론은 핍박하고 보복한다. 여기에는 대학, 박물관 등 교육·문화 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권력의 외형’까지 바꾸고 있다. 백악관 이스트윙(동관)은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대형 연회장(볼룸)이 들어선다. 공사비는 2억5000만달러(약 3586억원)다. 역사보존단체와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건물은 보존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이스트윙을 철거했으며,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공사비까지 뜯어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백악관이 ‘개인 브랜드 궁전’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쓰는 단어는 ‘강하다’(Strong), ‘위대하다’(Great), ‘승리했다’(Won)다. 힘과 우월, 그리고 지배의 이미지가 깔려 있는 언어가 보여주듯, 트럼프의 리더십은 독단적이고 지시적이며 충성 중심적이다. 자율과 토론을 중시하는 민주적 리더십과는 결이 다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로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가 행정부를 넘어 의회, 사법부, 나아가 시민사회와 언론까지 통제하려 한다”면서 이를 “권력의 경계를 넘어서는 위험한 확장”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신라 금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천마총 금관의 화려한 장식에는 하늘과 인간, 신성의 질서가 담겨 있다. 권력은 하늘(신)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며, 절제와 책임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전한다. 다시 말해, 왕관은 통치의 영광이 아니라 통치의 무게를 상징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제대로 이해할지는 의문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신라 금관을 단순히 권력의 상징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오독(誤讀)이다. 왕관은 장식인 동시에 짐이며, 머리에 얹으면 더 무거워진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통치자다. 왕이 되고 싶어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금으로 만든 왕관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제어할 줄 아는 지혜의 철학일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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