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부 “법무부 소관”…22대 국회선 개정안 발의도 안 돼
동의 없는 성관계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 ‘비동의 간음죄’가 최근 프랑스 의회에서 채택됐지만 한국에서는 논의가 멈춰선 상태다. 성폭력 방지와 피해자 지원 정책 주무 부처인 성평등가족부는 “비동의 간음죄는 형법 개정 사항으로 법무부 소관”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
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위한 형법 개정안은 22대 국회에서 발의조차 되지 않으면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비동의 간음죄’는 상대방의 동의가 없거나 의사에 반해 이뤄진 성관계를 성폭력 범죄 처벌 대상에 포함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강간죄 성립 요건을 ‘폭행이나 협박 여부’에서 ‘동의 여부’로 확대해야 한다.
한국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 논의는 2018년 온라인을 중심으로 권력형 성범죄를 고발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이후 본격화됐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총선 때 비동의 간음죄 도입 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실질적 논의는 없었고, 2024년 총선 땐 “당내 이견이 상당하다”며 아예 공약에서 빼버렸다. 국민의힘은 비동의 간음죄 신설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비동의 간음죄는 많은 국가에서 활발히 논의·채택되고 있다. 프랑스 상원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하원에 이어 성폭력을 ‘동의 없는 모든 성적 행위’로 정의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채택했다. “피해자의 침묵이나 반응 부재는 동의로 간주할 수 없다”는 해석도 포함했다.
일본은 2023년 ‘강제 성교죄’의 명칭을 ‘비동의 성교죄’로 변경해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은 2003년에 성범죄법 개정을 통해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스웨덴은 2018년 사전에 명시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성적 동의법’을 통과시켰다.
한국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회피’ 속에 비동의 간음죄 논의가 사실상 멈춰있는 상태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작년 5월 비동의 간음죄 입법에 대한 정부 의견을 물었고, 당시 성평등부 전신인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으로 꾸려진 정부 대표단은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앞서 성폭력 범죄 체계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위원회는 비동의 간음죄 논의 이행 상황을 2년 안에 추가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22대 국회에서는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지난 3월 ‘비동의 강간죄 신설’을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려고 했으나 발의 요건인 정족수 10명을 채우지 못했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후보 시절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라며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장관의 입장과 달리 성폭력 관련 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 정책 수립에 책임이 있는 성평등부는 비동의 강간죄는 법무부 소관이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성평등부 관계자는 ‘법 개정 논의를 추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형법 개정 사항으로 법무부 소관”이라며 “세부적으로 말씀드릴 것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성평등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에 비동의 간음죄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발표했다가, 법무부가 “개정 계획이 없다”고 하자 발표 9시간 만에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국회 여가위에서는 “여가부는 부처 현안마다 논란 회피에 급급할 게 아니라 적시에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중앙부처로서 독립된 역할을 하라”는 지적이 나왔다.
노희근 기자(hkr1224@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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