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SK하이닉스 위상 강화
반도체 특별법 1년 넘게 표류
정치권, 지방선거 표심만 챙겨
전 세계 인공지능(AI) 시장을 뒤흔드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CEO)가 아시아태평양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AI 반도체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인정했다.
AI 대전환에 따라 전 세계에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수급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서도, 황 CEO는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SK·현대차·네이버에 26만장, 14조원 규모의 GPU를 풀기로 하면서 글로벌 AI생태계 강화를 위한 우군으로 낙점했다.
황 CEO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AI 3강’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기대감도 커진다.
하지만 국내 정치권은 반도체 산업 발전을 뒷전으로 한 채 ‘친노’(친 노동계)·‘반노’ 간 전선 싸움만 되풀이 하고 있어, ‘반도체 특별법’도 2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권 싸움에만 매몰돼 국가 경제 안보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등한시 하다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한국이 쥔 AI반도체 주도권을 외국 기업에 뺏길 수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던 반도체특별법 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고 이달 중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야당인 국민의힘과 이견이 갈리고 있어 이 과정에서 마찰이 예고된다.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클러스터 육성 시책 수립과 입주 기업 보조금 등 재정·행정적 지원, 반도체산업 전력·용수·도로망 지원 등을 골자로 한다. 주요 사안은 여야가 합의를 이뤘지만, 반도체 전문 인력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 특례’를 놓고는 민주당이 제외를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를 포함시켜야 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러는 가운데 반도체 특별법은 지난 정권에 등장한 이후 2년째 지연되고 있다. 젠슨 황 CEO를 비롯한 전 세계 AI 이목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쏠리고 있지만, 한국 정치권의 이권 다툼에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AI반도체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반도체처럼 수출 경쟁력을 더 높이고, 국가 부를 늘리면서, 안보와 민생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과제가 정부와 국회에 주어져 있다”며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여야 협의가 되지 않는다면 다수당만이라도 논의를 해 빠르게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1등 산업이 전체를 주도하기 때문에 2등과 3등은 큰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며 “세계 1등을 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국가적인 역량을 동원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재계 총수들은 정치권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묵묵히 ‘민간 외교관’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방한한 황 CEO와 ‘치맥 파티’를 가진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경쟁력과 함께 HBM의 공급 파워가 뒷받침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3분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합산 HBM 시장점유율은 80% 이상이다.
두 회사의 도움 없이 AI 칩을 만들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엔비디아가 배포한 삼성전자·SK·현대차와의 ‘AI 파트너십’ 각각의 발표 자료에는 이례적으로 이재용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회장의 코멘트가 포함됐다.
엔비디아는 특히 삼성전자에 대해 ‘HBM3E와 HBM4의 핵심 공급 협력사’라고 치켜세웠다. 반도체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될 경우 한국의 ‘AI 3강’도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AI반도체뿐 아니라 생산라인을 더 증설하려면 전력망과 인프라를 문제없이 갖춰야 한다”며 “이를 위한 반도체 특별법은 당연히 추진해야 한다. 52시간제 논쟁은 본질적 사안이 아닌 데도 정치적으로 이용돼 불필요한 갈등만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과 기업 간 협력 네트워크를 결합해 제대로 준비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우진·강승구·윤상호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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