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대기자
숙원이던 핵추진잠수함 보유가 분수령을 넘었다.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핵추진잠수함의 ‘연료공급’을 요청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시간도 안 돼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이란 방식으로 화답했다. 이 대통령이 생방송 중인 공개석상에서 전략무기 얘기를 꺼낸 것도 놀랍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이를 수락한 것도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북한의 핵 위협 고도화와 중국의 해군력 증강 속에서 핵추진잠수함의 확보는 지상과제였다. 30년간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과제를 이 대통령은 ‘(건조 능력은 있으니)연료만 달라’는 담대하고도 계산된 발언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넘어야 할 관문이 만만찮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과 변덕스러움을 감안하면 번복되거나 지연될 수 있다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가장 현실적인 변수는 미국 조야의 반대다. 핵확산 우려에 민감한 민주당과 공화당 일부의 반대 여론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워싱턴 정치계를 상대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가 한반도 안보와 미국의 인태지역 전략에 기여하며, 핵확산 방지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됨을 설득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핵추진잠수함의 건조 방식과 장소에 대한 세부 조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승인과 함께 ‘한화오션의 펜실베이니아 필리조선소에서 만들 것’이라며 미국의 조선업 부활과 연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우려처럼, 필리조선소는 잠수함 건조 시설이 없다. 도크를 새로 짓는 데만 최소 4년 이상이 소요되며, 잠수함 건조 기간 10년을 합하면 총 14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빨라야 2040년에 핵추진잠수함을 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안보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너무나 긴 시간이다.
반면, 이미 세계적인 잠수함 건조 능력을 갖춘 한국의 조선소에서 건조한다면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핵추진잠수함의 선체 건조는 기존 잠수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핵추진잠수함에 들어가는 소형원자로(SMR) 기술은 이미 확보하고 있다. 한국 주도로 건조해야 건조 노하우가 한국에 축적되고 향후 유지 보수와 독자적 전력 운용에 유리하다.
호주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2021년 9월 미국 영국 호주의 집단안보체제인 AUKUS가 출범하면서 미·영은 호주에 핵추진잠수함 기술 이전과 판매를 약속했지만, 현재 좌초 위기에 봉착해 있다. 호주가 핵추진잠수함 운용능력이 불비함을 들어 미국이 운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미 의회가 핵심 안보자산인 핵추진잠수함의 기술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2기 들어 상황도 변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안보 참모들은 자국에 필요한 잠수함도 제때 건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호주를 위해 핵잠수함을 건조하고 게다가 기술까지 이전한다는 데 대해 회의적이다. 이런 실정을 고려할 때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확보는 일단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이 건조 주도권을 놓칠 경우 잠수함의 귀속 문제와 작전 운용의 자율성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해군력 증강에 몰두하는 미국이 호주에 대해 검토했던 방안을 한국에 대해서도 적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번 합의는 한국의 오랜 숙원을 풀 절호의 기회임은 분명하다. 건조가 순항한다 해도 연료의 공급은 또 다른 문제다. 미국이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지 않고 미국으로부터 공급 받으라고 주장한다면 반쪽짜리에 그친다. 이 대통령의 ‘연료 공급을 해달라’는 말의 행간에는 핵추진잠수함용 우라늄 저농축과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해 달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연료를 미국이 공급하겠다고 한다면 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조선업 부활 심리를 역이용해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이 미국에 득이 된다는 논리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외교와 협상이 절실하다. ‘한국 주도 건조’라는 대못을 확실하게 박아야 한다.
이규화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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