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지난 10월 19일(현지시간) 보석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 경찰은 사건 발생 6일 만에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 1500억원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는 보석이 도둑맞았다는 것은 충격이지만 새삼 놀랍지는 않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오래전부터 범죄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 방식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세계적 예술품·보물 절도의 대표적 사례들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

◆도둑이 만든 ‘모나리자’ 신화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1911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다. 1911년 8월 21일 아침, 그날은 휴관일이었다. 평소처럼 직원들은 전시실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걸려 있어야 할 벽에 네 개의 못 자국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박물관 전체가 봉쇄됐고, 경찰은 세느강까지 뒤졌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시인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용의자로 지목돼 조사를 받기도 했다. 프랑스 신문들은 “국보 도난!”, “루브르의 수치!”라며 연일 대서특필했다.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고, 매일 수백 명이 박물관을 찾아 모나리자가 걸렸던 빈 벽 앞에 줄을 섰다. 사람들은 사라진 그림이 아닌, 그림이 없어진 자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모나리자는 ‘루브르의 여왕’이자 세계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2년 후 붙잡힌 범인은 이탈리아 사람 빈첸초 페루자였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잡역부로 한때 일했었다. 범행 1년 전 그는 도난을 막기 위해 그림 주위에 설치한 보호 유리를 시공했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전날 밤 슬그머니 박물관에 들어가 숨어있다가 다음날 그림을 훔쳤다. 벽에서 떼어낸 후 두꺼운 보호 유리와 액자를 분리했고, 캔버스만 남은 그림을 옷 속에 숨겨 밖으로 들고 나갔다.

페루자는 애국심을 절도의 이유로 들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인이다. 프랑스가 훔쳐간 이 그림을 조국에 돌려주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야기가 퍼지자 그는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그에게 온갖 음식과 선물, 그리고 돈까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이 낭만적인 명분 뒤에는 더 복잡한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 애국심이 아닌, 돈이 진짜 목적이었다. 페루자는 그림을 팔려고 피렌체의 한 화상에게 접촉했다가 체포된 것이었다.

1913년 12월, 모나리자는 마침내 루브르로 돌아왔다. 2년 3개월여 만의 귀환이었다. 페루자는 6개월 옥살이 후 박수갈채를 받으며 풀려났다. 이 사건으로 모나리자의 유명세는 엄청나게 높아졌다.

‘모나리자’를 그린 사람은 다빈치였지만 그것을 지금의 ‘모나리자’로 만든 사람은 페루자라 할 수 있다.

◆5억달러어치 그림이 사라졌다, 아직도 미스터리

미국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도난 사건도 유명하다. 1990년 3월 18일 새벽 1시 24분쯤 경찰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미술관의 인터폰을 눌렀다. 보스턴 시내가 성 패트릭 데이 축제로 들떠 있던 때였다. 그들은 “소란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며 젊은 경비원들을 속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경비원들을 제압하고 수갑을 채워 지하실에 가뒀다. 그리고 렘브란트, 베르메르, 드가, 마네의 그림 13점을 훔쳐 사라졌다.

이 사건은 역대 최대 규모의 미술품 절도로 기록됐다. 피해액은 5억달러(약 7142억원) 규모다. 게다가 아직도 미해결 상태다. 박물관 측은 정보 제공에 대한 현상금을 1000만달러(약 143억원)까지 높였지만 범인과 작품의 행방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현재 박물관 내 도난 작품 자리엔 ‘빈 액자’가 걸려 있다. 언젠가 작품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독일판 ‘오션스 일레븐’, 정교했던 8분의 범죄

2019년 11월 25일 새벽, 독일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 서관 1층에 마련된 전시관 ‘그뤼네 게뵐베’(그린 볼트)가 털렸다. 범인들은 인근 배전반에 불을 질러 일대의 전력을 끊어 CCTV와 경보 시스템을 무력화했다. 그 틈을 타 철제 창살을 절단하고 침입했다. 도둑들은 도끼로 전시함을 깨고 다이아몬드 4300여 개가 박힌 18세기 왕실 장신구를 비롯한 각종 보물들을 챙겨 달아났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단 8분이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피해액은 약 1억달러(약 1428억원)로,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예술품 절도 사건이다. 조사 결과, 범인들은 전시관의 전력망과 보안 사각지대를 면밀히 파악해 완벽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은 이들을 ‘현대판 루팡’이라 불렀다.

5명의 용의자 가운데 3명은 범행 1년 만인 2020년 11월 검거됐다. 이어 다음해 나머지 2명도 체포해 용의자 전원이 붙잡혔다. 범인은 모두 잡혔으나 도난품은 행방이 묘연했다가 2022년 말에야 대부분 회수됐다. 다만 일부는 보석이 빠져 있는 훼손된 상태였다. 그 보석들은 암시장에서 팔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박물관의 벽은 높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보다 더 높다. 역사를 돌아보면, 박물관과 미술관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이 시험받는 무대였다. “박물관의 가장 큰 약점은 벽이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말은 지금도 유용하다. ‘도둑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속담처럼, 시스템과 매뉴얼만으로는 도둑의 상상력을 막을 수 없다. 결국 예술품을 지키는 것은 철통 보안이 아니라, 그것을 단순한 ‘물건’이 아닌 ‘인간의 정신’으로 존중하는 태도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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