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요즘 ‘손목닥터9988’이라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고 있다. 하루 8000보 이상 걸으면 200원을 적립해주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인센티브형 건강 정책 앱이다. 금액은 작지만, 해보니 제법 동기부여가 된다. 가족이 처음 권했을 때는 “오세훈 시장이 예산낭비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변에 적극 권하고 다닌다. 내가 ‘변화’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녁때 귀가해 앱을 확인해보고 걸음 수가 목표에 미달했으면, 다시 운동화를 신고 나가 8000보를 채운다. 이동할 때도 걸을 수 있는 선택을 하고 계단이 있으면 걸어 올라간다.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동력이다. 200원씩 쌓이는 포인트는 덤이다. 숫자가 올라가니 게임에서 등급을 올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도 준다. 앱이 강제나 규제, 통제가 아니라 ‘유도와 보상’을 통해 개인의 자발적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정책이란 이런 방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정책이 규제 위주의 ‘설계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가 인간의 행동을 자신의 계획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인데,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인간 이성의 ‘치명적 자만’이라고 비판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와 비슷하다. 사회는 정부가 설계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자율적 행위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알아서 잘 할테니 국민은 따르기만 해라, 그러면 좋은 세상이 만들어진다”라는 사고방식은 건방진 오만이며, 결국 심각한 부작용만 양산해 국민을 더 힘들게 만드는 ‘비극’이 벌어질 뿐이다.
최근 갭투자 금지 등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해 시행한 국토교통부 차관이 정작 본인이 갭투자를 한 사실이 드러나 사임했다. 자신도 지키지 않은 규제를 만들어 국민에게 강제한 셈이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시나리오를 쓰듯 통제하려 하지만, 국민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판단하고 움직인다. 그 결과는 언제나 부작용과 상황 악화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국민을 힘들게 만들었던 문재인 정부의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을 “나를 따르라”라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이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로 이어졌다. 정부는 복귀 명령과 처벌 경고로 대응했지만, 필수과 인력은 오히려 이탈했다. 계엄포고령에 ‘전공의 미복귀 시 처단’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실렸다. 시간이 흐른 지금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 지원율은 급락했고, 지방 대학병원의 필수과 교수들은 잇따라 사직하고 있다. 이런 설계주의 정책으로는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를 정상화시킬 수 없고 비극만 초래할 뿐이다.
의사들이 필수과나 지방 의료현장으로 가지 않고, 이제는 있던 사람마저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의지 부족이나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급증하고 있는 민형사 소송, 주 100시간 근무 등 열악한 근무환경, 원가의 70%만을 지급하는 필수의료 수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규제와 명령만으로 필수과와 지방에서 일하게 만들겠다는 정책은 인간 본성에 대한 오만한 무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도와 보상은커녕 “과연 나라면 그걸 할 것인가?”조차 자문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설계주의의 비극은 이미 20세기 초 소련의 계획경제 실패가 생생하게 증명했다. 정부가 생산과 가격 등 모든 경제를 계획하고 통제해 소위 ‘이상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비효율과 생필품 부족 등 경제 붕괴로 이어졌다.
사회는 기계가 아니라, 개개인들이 각자의 정보와 욕망으로 움직이는 복잡한 유기체이다. 그러니 정책이 성공하려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본성에 기반해야 한다. 국민은 규제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령과 규제가 아니라 ‘동기부여의 구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손목닥터9988처럼 자율성과 보상을 결합한 시스템이 사람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다.
정부가 국민을 마음대로 조종 가능한 ‘장기판의 말’로 보지 않고, 함께 목표를 만들어가는 ‘파트너’로 대할 때, 정책은 비로소 기능하기 시작한다. 강제가 아닌 유도,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 이것이 앞으로 정부 정책에서 설계주의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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