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한 중 김정은과 만남에 여전히 미련

내부적으로도 미북 간 회동 결론 나지 않은 듯

제재 논의 가능성 언급…‘비핵화 아닌 핵감축’

北, 파병 보상으로 러 지원 받아 다급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만남에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김정은과 대북 제재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재 완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을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했다. 이를 감안하면 그의 ‘제재 논의’는 비핵화보다 핵감축을 전제로 깔고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 때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에는 제재 해제와 비핵화를 주고받는 빅딜을 김정은에게 제안했었다. 김정은 이를 거부하고 핵폭탄을 축적해왔다.

현재 북한은 러시아, 중국과 밀착하며 제재 내성을 한층 키운 터라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 논의에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안에서 김 총비서와 만남에서 미국이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지 취재진이 묻자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 이는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꽤 큰 사안이다. 아마 이보다 더 큰 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미북 정상회담 의제로 대북 제재를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화에 완고한 입장인 북한에 대해 제재 완화를 비친 것은 이번 APEC 회의 참석차 방한하는 시점에서 김정은과 2019년 했던 것처럼 ‘깜짝쇼’를 연출하고 싶어하는 트럼프의 기질이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이 나온다.

역대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단념시키기 위해 갈수록 제재를 강화하며 북한을 경제적으로 옥죄어왔고, 이 때문에 트럼프 1기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제재 완화는 북한의 주요 외교 목표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합의했지만, 이후 열린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에서는 영변 핵시설 해체와 대북 제재 대폭 완화 맞교환을 제시한 김 위원장과 ‘영변 플러스 알파’ 시설의 해체를 요구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됐다.

다만 김정은 총비서가 ‘비핵화 포기’를 북미 대화 조건으로 제시한 상태에서 미측은 최근 북한과 전제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비핵화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일단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양상이다.

그러나 제재 완화 가능성만으로 북한을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위한 대화로 끌어낼 수 있을지는 다수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의적 시각이 많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지원하는 대가로 식량과 에너지 등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최근 수년간 가상화폐 탈취로 핵·미사일 개발 자금을 조달해오면서 과거처럼 제재 완화에 매달리지 않는 모습이다.

트럼프 1기 때는 중국이 국제사회 제재 연대를 허무는 뒷구멍 지원으로 제재를 약화시켰다.

제재 완화 카드의 가치가 떨어진 반면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 러시아의 묵인 속에 이전보다 고도화했기 때문에 제재와 핵을 주고받는 과거의 공식이 다시 성립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트로이 스탠거론 카네기멜런대 전략기술연구소 연구원은 연합뉴스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열의에도 불구하고 그가 김정은을 실질적인 대화를 위한 테이블에 앉히기에는 가진 카드가 제한됐다”면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마지막으로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난 뒤로 제재 완화는 그 가치를 많이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 대신 찾은 러시아는 전반적인 제재 집행을 약화하면서 북한에 상당한 경제·군사적 혜택을 제공했다”며 “트럼프는 김정은과 협상을 타결하고 싶어 하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려면 북러 관계를 단절할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러시아의 지원과 제재 우회를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이 김정은 위원장이 원하는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제재 완화가 여전히 북한의 구미를 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김정은 총비서로서는 자신과의 정상외교에 관심이 있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에 미국과 협상해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연합뉴스에 “어떤 유형의 제재 완화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진전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의의 표시가 될 수 있지만 문제는 김정은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보내는 대화 메시지에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전혀 없다는 데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어느 정도의 불만이 감지된다”면서 “제제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떠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막바지에 이뤄질 수도 있는 정상회담의 가치를 키우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고 관측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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