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글씨’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징표일 뿐 아니라 예술 장르의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몸 가짐과 쓰는 언어, 글씨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서예(書藝)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발전해왔다. 중국 여행때 상당히 인상깊은 장면이 하나 있었다. 큰 붓을 물에 적셔 공원의 타일 바닥위에 글씨 연습을 하는 광경이다. 주요 도시를 방문할때마다 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중국이 가진 문화의 힘을 드러내는 듯 해 부러웠다.

중국의 서예는 세계의 여러 문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독립적인 예술분야로 발전한 문화이자, 붓으로 글씨를 쓰는 일종의 조형예술이다. 점 하나, 획 하나, 혹은 글자 하나에 인생과 자연, 그리고 우주를 담는다. 고금을 통해 한자의 서법은 수많은 문인들을 매료시켰다.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소동파 정판교 등 위대한 문인들은 ‘난정서’, ‘백원첩’, ‘서보’, ‘제질첩’, ‘자술첩’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중국 황제 어떻게 살았나’(쟝위싱 지음, 지문사 펴냄)에 따르면 황제 가운데서도 위대한 서예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시대를 풍미하는 서풍을 만들어 서파(書派)를 탄생시켰으며, 역대 서법을 수집해 귀중한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단순히 취미로 즐기는 것을 넘어, 서예의 발전과 수집에 깊이 관여하며 중국 문화사에 큰 영향을 남겼다. 대표적인 황제로는 삼국지의 조조, 태평성대를 이룬 당 태종, 남당의 황제 이욱 등을 꼽을 수 있다.

유명한 ‘단가행’(短歌行)을 남긴 문인이기도 했던 조조(曹操)는 “필묵이 웅비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들었다. 당대의 서예가이자 평론가였던 장회관(張懷瓘)은 조조의 서체를 “뛰어나게 장초(章草)를 잘 썼고 웅장하고 빼어나 견줄 데가 없다”고 평했다. 조조는 서예뿐만 아니라 글씨에 대한 감정 안(眼)도 가졌다. 유표 밑에 있다가 투항해 조조 사람이 된 양곡의 글씨를 좋아해 전쟁에 나가서도 그의 작품을 군영에 걸어두고 감상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조조의 아들인 조비와 조식 역시 서예를 비롯한 문예에 조예가 깊었다. 특히 조비는 서예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예가 크게 발전했던 건 당 나라 시대였다. 우세남 구양순 저수량 설직 안진경 유공권 장욱 등 내노라하는 서예가들이 시대를 풍미했다. 당 태종, 고종, 예종, 무측천, 현종, 숙종, 선종 등 당의 많은 황제들이 서예를 좋아했던 게 서예의 부흥을 이끌어냈다.

황제 가운데 특히 태종 이세민은 태평성대를 이루고 문화를 번성시켰으며, 그 자신이 새로운 서풍을 창조했다. 이세민은 ‘난정서’(蘭亭序)로 유명한 왕희지(王羲之) 글씨를 숭상할 정도였다. 그래서 직접 ‘왕희지전론’을 쓰고, 왕희지에 서예의 성인이라는 뜻의 ‘서성’(書聖) 칭호를 내렸다. 태종은 ‘난정서’를 너무 사랑해 자신이 죽으면 ‘난정서’를 관에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했지만, 안타깝게도 ‘난정서’는 남아 있지 않다. 태종은 ‘필법론’과 ‘지법론’, ‘필의론’ 같은 이론서를 직접 편찬하기도 했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인 무측천도 서예를 아꼈다. ‘승선태자비’ 글씨가 전한다. 무측천은 자신의 통치 이념을 드러내기 위해 ‘측천 문자’라는 새로운 한자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태종의 손자인 현종 이융기는 특히 예서를 잘써 당시 예서의 대가였던 한택목, 이조, 사유측 등과 함께 이름을 남겼다.

남당의 황제 이욱은 시와 서화에 모두 능했는데 붓이 아니라 비단을 말아 글씨를 썼다. 이욱 또한 왕희지 글씨를 좋아했다.

송 나라를 연 태종 조광의도 서예를 아껴 당나라 황실이 소장했던 작품들을 모아 서예 교범인 ‘순화각첩’을 편찬했다. 이 법첩은 역대 유명 서예가들의 글씨를 모아놓은 것으로, 후대 서예가들에게 중요한 학습 자료가 됐다. 그는 중국 역대 서예 작품들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데 큰 공헌을 했으며, 자신도 서예에 조예가 깊었다. 특히 초서에 능했다.

송 희종 조길은 예술을 너무 사랑해 나라를 잃은 비운의 황제로 일컬어진다. 그는 가는 금실‘을 뜻하는 ‘수금체’라는 서체를 개발했는데 세로로 가늘고 필체가 강한 게 특징이다.

명의 개국 황제 주원장도 어려서 글공부는 많이 못했지만 글씨는 훌륭했다.

이밖에 청대 황제 가운데선 강희, 옹정, 건륭 등 태평성대를 이룬 황제들이 모두 행서와 초서에 능했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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