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 “속도를 내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 내부에서 논의하고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경제 부총리가 공식 답변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하지만 구 부총리도 “외환·자본 유출입의 문제도 예상되기에 충분한 보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제 조건을 걸었듯 원화 코인 발행 허용은 거시경제 운용 측면에서 볼때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투자자에겐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수 있지만 ‘통화 주권’을 해칠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가격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 가치를 법정 화폐나 실물 자산에 연동시켜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자산이다. 가령 1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보유자가 원할 경우 1달러로 바꿀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발행이 허용된다면 1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1원으로 교환가능하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언제든 이런 교환 요구에 응할 수 있도록 달러나 원화 또는 실물자산을 비축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가장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곳은 지난 대선때 이재명 후보 선대위에서 디지털자산위원장을 맡았던 민병덕 의원 과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교수 등이다. 이들은 원화 코인 발행 허용 근거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24시간 실시간 결제가 가능하며, 중개기관을 거치지 않아 송금 시간과 수수료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우선 꼽는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 간 거래 시 중간에 미국 달러를 거치면서 발생하는 환전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또 디지털 지갑 주소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으며, 탈중앙화 금융(DeFi)이나 토큰 증권 발행 및 유통의 핵심 결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등 금융혁신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본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통화 주권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통화 주권을 실제로는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먼저 한국은행도 누누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원화 코인이 도입되면 통화정책이 무력화될 것이다. 통화량과 금리로 경기변동을 조절하는 한은의 정책 수단이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원화 코인 발행이 허용된다면 코인이 통화량을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한은은 공개시장조작 등을 통해 통화량을 관리하기 어려워진다. 금리 정책도 마찬가지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려도 기업이나 개인이 더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코인을 선호하게 되면 금리 조절을 통한 거시경제정책 수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물가 성장 국제수지 등 거시경제 안정에 큰 제약을 받게 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이런 맥락이다.
또하나 결정적인 허점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에서 경험했듯 수출로 먹고사는 개방경제인 한국은 원화 가치(원화 환율)의 안정이 경제정책의 최우선순위 중 하나다. 외환당국이 외환유출입을 까다롭게 규제하는 건 환율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명거래가 용이한 원화 코인이 허용되면 당국의 외환관리 역시 무력화된다. 2022년 이후 가상자산을 이용한 불법거래의 60% 이상이 스테이블코인을 악용한 것이다. 빛의 속도로 원화 코인과 달러 코인 간 교환이 가능한데 이런 거래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원화 코인 발행업체들의 신뢰성 저하로 ‘코인런’이 발생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건 개별 금융사의 파산에 따른 ‘뱅크런’을 넘어,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파생금융상품 ‘CDO’(부채담보부증권)·‘CDS’(신용파산스와프)의 부실에 따른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유사한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금융시장의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수많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들이 원화로 언제든 바꿔줄 수 있는 담보자산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리고 코인 발행에 따른 주조차익을 이들 민간업체가 갖는 게 옳은 일인가. ‘테라-루나’ 사태에서 보았듯 민간이 발행하는 암호화폐의 신뢰는 한순간에 깨질 수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투자자 피해와 금융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원화 코인을 선호하는 것은 투자자들이 환호하고, 재정적자를 더 늘릴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원화 코인 발행업체들은 코인 발행을 위해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살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적자 재정’을 천명한 이재명 정부의 정책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으로 성공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중국은 큰 관심이 없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로 인해 위협받는 달러 패권을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유지하고자 한다. 가상자산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트럼프의 아들들은 한국에서도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 중이다. 국내 모 재벌 그룹 회장이 그들을 후원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이 결코 아니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통로가 되는 주식시장과 완전히 다르며, 합법적으로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시장만 열어주는 것이다. 가뜩이나 한국은 파생상품 거래에서 세계 수위를 다툴 정도로 투기성 거래가 적지 않다. 업비트 등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의 달러 스테이블코인 거래는 지난해 12월엔 월 1조원에 달하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는 다지털자산기본법안 등 5건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는 상태다. 지금으로선 한은만이 외롭게 원화 코인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화폐의 디지털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큰 그림도 그려지지 않은 마당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허용은 신중해야 한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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