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분노 시위…그러나 권력은 다시 군부로
인종적 분열과 주인의식 결여로 정치혼란 지속
풍부한 자원도 정치적 주도세력 부재로 방치돼
아프리카 옆 섬인데도 동남아인들이 먼저 정착
국민적 분절의 근저에 동남아계 이주 도운 해류
이국적인 것을 넘어 탈지구적인 이미지의 바오밥나무. 마다가스카르는 최대의 바오밥나무 자생국가다. 마다가스카르가 요즘 거꾸로 박혀 있는 듯한 바오밥나무처럼 뒤집혔다.
지난달 25일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겉잡을 수 없이 커지더니 지난 14일 안드리 라조엘리나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새로운 군부세력이 정권을 장악했다. 이번 정변은 잦은 단수와 정전에 대한 항의가 불씨가 됐으나, 고질적인 빈곤과 정치 부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역사적 민족적 인종적 층위가 옅은 나라
그리고 그 원초적 원인을 파고들어가면 이 나라가 국민통합과 정치안정을 이룰 역사적 민족적 인종적 층위가 매우 옅다는 사실에 닿는다.
이 섬나라에 본격적으로 인간이 정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서기 4~5세기로 추정된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대륙 옆 동남부 인도양 상에 자리한다.
정주민의 유래에 따라 이 나라는 인종적으로 분절돼 있다.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다. 물론 단일민족국가라 해도 극단적 분열상을 보이는 나라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마다가스카르는 국가적 정치체제 성립의 역사가 채 20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 80년마저도 피식민시대였다.
마다가스카르에 그나마 나라라 부를 만한 정치체제가 형성된 것은 19세기 초 중앙부 고원지대의 메리나(Merina) 부족이 세운 메리나왕국이 처음이다. 국토 전역에 통치가 미친 것도 아니다. 중앙부 일부에 한정됐고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부족국가들로 나뉘어 있었다.
19세기 말 1880년대 들어 프랑스가 침입했고 1960년 독립할 때까지 프랑스 식민시대를 겪었다. 프랑스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디바이드 앤 룰’ 방법을 활용했다. 메리나족을 행정의 말단조직으로 활용해 그밖의 부족들을 부리게 했다. 이로 인해 그러잖아도 갈라졌던 인종적 분절은 더 심화했다.
프랑스가 내던지듯 독립한 마다가스카르는 오늘날까지 65년간 수십 차례의 쿠데타와 정변을 겪으면서 갈등이 누적됐다.
문화적 민족적 동질성은 고사하고 인종적으로도 각기 갈라져 국가를 놓고 서로 더 차지하려고 싸웠다. 하나의 국가적 정체성을 쌓을 시간, 기회도 없었고 또 그럴 의사도 없었다. 정치세력들에게 주인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인종적 부족적 이익에 매몰돼 국가의 발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주도 정치세력 부재로 풍부한 자원 방치
마다가스카르는 단일 섬으로 이뤄진 국가 가운데 가장 넓은 국토를 자랑한다.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으로 면적이 58만7200㎢ 에 달한다. 인구도 3000만명으로 과하지도 과소하지도 않은 적절한 규모다.
기후대도 중앙 고원지대는 온대성으로 벼농사를 짓기에 적절하다. 이 때문에 마다가스카르는 의외로 주요 쌀생산국이다. 2021년 기준 439만톤(t)의 쌀을 생산했다. 2024년 한국 쌀 생산량이 385만톤인 것과 비교하면 쌀 생산 잠재력이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품종 개발과 농지 개척을 제대로 한다면 얼마든지 증산할 수 있고 전 국민이 배곯이는 피할 수 있다. 특히 바닐라는 전 세계 수요량의 80%가량을 공급할 만큼 최대 생산국이다.
여기에 열대우립, 아열대, 사바나와 사막성 기후까지 갖춰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마다가스카르에서만 볼 수 있는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군락지어 서 있는 풍경은 압권이다.
무엇보다도 마다가스카르는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미국 지질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석유 매장량은 110억 배렬, 천연가스는 1670억㎥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니켈도 1억6000만톤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아프리카 최대 생산국이다. 흑연도 주요 수출국이다.
고품질의 사파이어와 루비도 대규모로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알라카카 지역에서 채굴되는 사파이어는 세계 최고의 품질로 정평이 나있다.
이와 같은 자연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석유와 천연가스 등은 대부분은 미개발로 남아있다. 정치적 불안과 국민통합이 이뤄지지 않으니 외국 자본도 선뜻 나서길 주저하기 때문이다.
원초적 문제, 인종적 분절을 만든 것은 해류와 계절풍
그렇다면 왜 마다가스카르는 국민통합이 어려운가. 왜 정치세력은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고 종족적 부족적 이익에 매몰돼 있는가.
마다가스카르의 국민을 이루는 인종적 뿌리와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종적 민족적 뿌리가 달라도 오랜 세월 부대끼면 통합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에는 그런 시간적 정치적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정치체제라는 것이 19세기 초에야 등장했고, 이후 오랜 피식민시대의 분열정책도 겪어야 했다.
더구나 생리적 혼혈이 수백년에 걸쳐 일어났어도 문화적 공동체 의식을 갖추기에는 사회 시스템이 열악했다. 겉으로는 말라가시인(Malagasy)이 대종이고 20여개 소수 종족집단으로 나뉘어 말라가시인을 중심으로 통합될 것처럼 보이지만, 각 인종들이 유래한 출발지의 정체성이 혼재한 채 분절돼 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지리적 영향이 작용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으로 아프리카 동남부에 위치한 엄연히 아프리카 국가다. 그러나 인종적 주축은 동남아시아인들이다.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의 아시아’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대륙과는 평균 약 600㎞정도(최근접거리는 약 400㎞) 떨어져 있는 반면,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와는 6300㎞ 거리다. 10배는 더 동남아시아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서기 4세기에 마다가스카르에 처음 도래한 사람들은 동남아계였다. 이들 종족이 주로 중앙고원지대에 정착한 메리나족으로 현재 전체 국민의 26%를 차지한다. 이후 베치미사라카족, 베칠레오족 등 다른 종족이 따라 들어왔다. 이들과 이들의 혼혈 말라가시인이 현재 마다가스카르 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이주는 동남아계 이주보다 늦은 11세기 들어와 시작됐다. 규모도 크지 않았다. 이들은 주로 서부 해안지대에 정착했다. 이들과 동남아계와 혼혈이 바로 말라가시인으로 새로운 종족이 형성됐다.
이밖에 현재 소수의 프랑스인, 코모로인, 인도인, 중국인 공동체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먼 동남아인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은 왜 가까이 있는 섬에 늦게 도착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바람과 해류 때문이다. 동남아인들을 마다가스카르로 이주할 수 있게 해준 두 자연적 힘이 있다.
우선 겨울 몬순이다. 인도양에 부는 몬순 계절풍은 겨울(10월~4월)에 북동풍이 된다. 이 바람을 타고 비교적 쉽게 인도양을 항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론 적도 바로 아래 표층류인 남적도(South Equatorial Current) 해류 때문이다. 이 해류는 남동 무역풍에 의해 형성되며 인도네시아 근처에서 시작돼 서쪽으로 흘러 마다가스카르 북부 해역에 이른다. 동남아인들은 이 해류를 타고 배를 쉽게 저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이 가까이 있는 섬에 왜 일찍 그리고 대규모로 넘어오지 못했느냐는 의문도 해류가 답한다. 아프리카대륙과 마다가스카르섬 사이의 모잠비크 해협은 아굴라스(Agulhas Current)라는 강력하고 빠른 해류가 흐른다. 이 거센 해류가 아프리카인들의 항해를 늦춘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60여년 마다가스카르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정변과 정치적 불안, 그로 인한 국가발전 지체는 이 같은 태생적 인종적 배경의 차이에서 왔고, 놀랍게도 해류와 계절풍이라는 지리적 환경이 작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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