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올해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 무려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면역학 분야의 사카구치 시몬 교수가 생리의학상을, 기타가와 스스무 교수가 화학상을 수상했다. 두 연구는 분야도 규모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철저한 계산보다 우연과 관찰이 낳은 통찰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작은 다름을 놓치지 않은 눈, 반복 실험 끝에 ‘예상 밖의 현상’을 새로운 원리로 바꾼 집요함이 노벨상으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일본 사회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우연의 발명’ 역시 이 노벨상과 닮아 있다. 수도물로 바이러스를 없애는 세계 최초의 장치인 ‘모야’(moya)가 그 주인공이다.
올 여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변이 확산, 백일해와 수족구병의 유행, 그리고 다가올 인플루엔자 시즌까지 일본은 다시 한번 ‘공기 위생’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품도, 전기도, 필터도 필요 없는 전혀 다른 방식이 등장했다. 단지 물만으로 공기를 정화하는 장치인 ‘모야’다.
이 장치를 개발한 곳은 플루가티 주식회사다. 이 회사 대표 모리히사 야스히코(森久康彦) 씨는 기존 공기청정기처럼 오염된 공기를 기다려 걸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바이러스에 접근해 활동을 멈추게 하는 ‘공격형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핵심은 불순물이 전혀 없는 ‘순수’(純水)다. 수도물 속 염소와 미네랄을 제거해 완전히 깨끗한 물로 바꾼 뒤 머리카락보다 훨씬 작은 입자로 만들어 공기 중에 분사한다. 이 미세한 물안개가 방 안을 떠돌며 바이러스 입자와 만나면 그 활동이 멈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원리가 철저한 설계가 아니라 한 연구원의 단순한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기술연구소의 아오키 타카히토 씨는 페퍼민트 오일을 공기 정화에 활용하는 실험을 진행하다가 비교용으로 일반 물 대신 잘못해 증류수, 즉 순수한 물을 사용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이러스 수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처음엔 오류라 여겼지만 반복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이어졌다. 순수한 물로 만든 초 미세 안개가 공기 중 바이러스와 충돌하며 그 활동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그는 그제야 깨닫았다.
이 ‘실수의 발견’은 한 기업을 위기에서 구했다. 모리히사 대표는 도쿄올림픽 시설에 납품하려고 염소계 약품 살균장치를 대량 생산했지만, 무관중 개최로 계약이 취소됐었다. 창고엔 1만7800대의 장비가 쌓였지만 쓸 곳이 없었다. 사업 존속조차 위태로웠던 그때, 아오키 씨의 실험 결과가 전해졌다.
‘물만으로 바이러스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회사에게 구원의 빛이었다. 이후 재고 장비를 과감히 개조했다. 기존 약품 탱크 대신 수도물을 정화해 ‘순수’로 바꾸는 시스템을 넣고 그 물을 초미세 안개로 분사하는 구조로 재설계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모야’다. 약품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도 바이러스를 줄이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공기 정화 장치다.
이 기술은 단순한 살균기를 넘어선다. ‘깨끗한 물로 공기를 정화한다’는 개념은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중시해 온 청결과 안심의 문화를 기술로 구현한 결과다. 미세한 물안개가 방 안을 조용히 떠돌며 공기를 맑게 하는 모습에는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조화의 미학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물’이라는 소재가 주는 신뢰감이 크다. 약품 냄새도 자극도 없는 마시는 물을 정화해 다시 공기 속으로 되돌리는 구조 덕분에 병원, 학교, 가정 등 어디서든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현재 플루가티는 의료기관과 항공사, 그리고 해외 전시회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 중이다.
모리히사 대표는 “언젠가 일본의 물 기술이 전 세계 위생 표준의 한 축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올해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보여준 ‘관찰과 끈기’, 그리고 모야가 증명한 ‘실수에서 피어난 통찰’은 서로 닮았다. 방향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우연을 기회로 바꾸는 눈, 위기 속에서도 다시 시도하는 용기, 그것이야 말로 혁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작은 물방울이 바이러스를 멈추게 하듯, 한 번의 실수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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