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 1839~1899)는 인상파 화가다.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요하고 서정적인 화풍의 풍경화를 남겼다. 특히 ‘오솔길’과 ‘물’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래서 ‘물의 화가’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시슬레의 작품은 ‘인상주의의 교과서’로 불린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시슬리’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대표작 중 하나인 ‘홍수가 난 마를리 항의 작은 배’는 1876년 작이다. 당시 센강 유역의 마를리 항이 홍수로 범람했는데, 시슬레는 홍수 장면을 배경으로 ‘마를리 항의 홍수’ 등 연작을 여섯 점이나 그렸다.
‘홍수가 난 마를리 항의 작은 배’는 홍수로 잠긴 마을에서 작은 배를 탄 두 사람이 포도주 가게 앞에 도착해 있는 모습이다. 거센 비가 그친 후 맑은 빛이 어른거리는 물에 잠긴 집 주변 풍경은 신비롭고 고요하며 시적인 정취마저 느껴진다. 하늘은 점점이 흩어진 구름 사이로 파랗고, 물위로는 햇빛이 반사된다. 잔잔한 풍경과 밝은 색조, 그리고 솜털 같은 흰 구름이 가득한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그림의 밝은 분위기는 자연 재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시슬레는 영국 국적이지만 섬유 사업가인 아버지 덕분에 파리에서 태어나 줄곧 파리서 생활했다. 그래서 이름도 영국식 발음 시슬리가 아닌 프랑스식 시슬레로 불렸다. 어머니는 음악가였다. 프랑스 최고의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와 스위스 출신 화가 마르크 가브리엘 샤를 글레르의 화실에서 공부했다. 여기서 모네 르누아르 바지유 등 인상파 화가들을 만나 평생 친구가 됐다. 1866년 살롱전에 입선해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마치 스냅 사진 같은 그의 풍경화는 담백하고 자연스러워 잔잔한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은밀하고 베일에 싸인 듯한 자연의 모습은 일종의 위안을 주는 매력을 지녔다. 영국 화가 컨스터블과 터너,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영향을 받은 시슬레는 모네와 르누아르보다 더 부드러운 색조를 사용했다.
시슬레는 야외 풍경만을 고집했다. 순간적인 빛의 효과를 사실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야외에서 작품을 마무리했으며, 평생을 걸쳐 인상주의 화풍을 지켰다. 보불(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아버지 사업이 파산하면서 지독한 가난과 싸우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시슬레는 산책하는 오솔길을 담은 작품도 여럿 남겼다. ‘모레쉬르루앙의 포플러 나무 오솔길’은 대표작으로 꼽힌다. 길에 드리운 보라색 그림자, 공기에 감도는 분홍 햇빛, 바람에 흔들리며 초록, 주홍, 노랑 등 형형의 색을 반짝이는 나뭇잎은 날씨가 온화한 날 한가롭게 길을 걷는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은 세차례나 도난 당하기도 했다.모레쉬르루앙은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60km 정도 떨어진, 프랑스 왕들이 사랑했던 퐁텐블로 숲에서 멀지 않은 센강 상류 마을이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거주했던 화가 마을 비르비종과도 가깝다. 중세의 고풍스러운 성과 교회가 있는 이 마을은 ‘시슬레 마을’로 불린다. 공식 행정명은 모레루앙에오르반으로 바뀌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시슬레는 말년의 10년을 여기서 보낸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앤 풀레는 모레쉬르루앙과 시슬레의 만남에 대해 “모레쉬르루앙의 차분한 정경과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변화들은 그의 재능과 멋진 조화를 이뤘다. 시슬레는 모네와 다르게 대양의 격랑이나 찬란한 색감의 코트다쥐르 풍경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망트의 길’에도 굽이친 길은 멀리 뻗어 있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길가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서 있다 . 마을 사람 몇몇이 평화롭게 길을 걷는다. 망트는 19세기 풍경화가 카미유 코로가 반했던 마을이다. ‘햇빛에 비치는 오르막길’ 그림은 빛과 대기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루브시엔느의 마쉰 길’은 피사로, 르누아르도 같은 길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
약 900점의 유화와 100점의 파스텔화, 그리고 수많은 드로잉을 남긴 그는 1899년 암에 걸려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죽을 때까지 무명 화가였고, 가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만 시슬레는 순수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너무나 평범해 지나쳐 버리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 스타일이 확연하게 변했던 모네 등과 달리 초기 인상파 화가들이 추구했던 자연의 빛의 재현을 끝까지 이어 나가 사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상당수 볼 수 있다.
명품 화장품 ‘시슬리’의 창업자 위베르 도르나노 백작 부부는 그의 그림을 아주 좋아해 브랜드 이름으로 시슬레의 이름을 빌렸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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