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카메룬에서 대선이 치러졌습니다. 올해 92세인 폴 비야 대통령은 8선 도전에 나섰고, 전 장관 출신 야당 후보는 승리를 주장하며 정권에 맞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43년간 이어진 비야 대통령의 권력은 견고해 보입니다. 과연 이번 대선이 변화의 새 바람을 일으킬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
14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야당 카메룬국가구원전선(FNSC)의 대선 후보인 이사 치로마 바카리(79) 전 장관은 전날 페이스북 영상 성명에서 “우리의 승리는 명백하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비야 대통령에게 “투표함의 진실을 받아들이라”며 “그렇지 않는다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며칠 안에 지역별 상세 투표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집권 여당인 카메룬인민민주운동(CPDM)은 이날 치로마 후보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그레고아르 오워나 CPDM 사무차장은 “치로마 후보가 승리하지 않았으며 투표소별 결과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통부·공보부·직업교육훈련부 장관 등을 역임한 치로마는 지난 6월 집권당을 탈당하고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대선에 도전했지요. 야권 유력 후보였던 아프리카신독립민주주의운동(MANIDEM)의 모리스 캄토(71)의 출마가 무산된 이번 대선에서 그는 비야 대통령을 꺾을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후보입니다. 선거 운동 기간 그는 대규모 군중을 모으고 야당 연합과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알자지라방송은 전했습니다.
앞서 대선은 지난 12일 오전 8시에 시작돼 오후 6시까지 진행됐습니다. 카메룬에서는 결선 투표가 없어 이날 투표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가 승리하게 됩니다. 약 800만명의 유권자가 등록된 이번 대선 개표 결과는 헌법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늦어도 오는 26일까지 발표될 예정입니다. 후보는 비야 대통령을 포함해 총 12명으로, 야권에서 치로마 등 11명의 후보가 난립했습니다.
세계 최고령 국가원수인 비야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정치학과 행정을 공부했고 1975년 총리로 임명됐지요. 1982년 아마두 아히조 초대 대통령이 사임하자 헌법상 자동 승계로 대통령에 올라 43년간 집권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지도자이지만 이번에 또다시 7년 임기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고령과 건강 악화에 따른 통치 능력 논란과 지속되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 각계에서 사임 요구가 잇따랐지요. 그의 딸 브렌다까지 틱톡에 아버지를 지지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영상을 올렸다가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시하는 일도 발생했지요. 그럼에도 비야 대통령은 출마했습니다.
이번에 당선되면 무려 8선 대통령이 됩니다. 그러면 100세가 될 때까지 카메룬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는 국가기관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데다, 11명의 후보가 나선 야권의 분열로 이번에도 무난하게 당선될 것이라는 게 현지의 대체적인 예상입니다.
지난 2018년 대선에서도 그랬지요. 14%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했던 야권 후보 모리스 캄토가 대선 이튿날 승리를 선언했다가 전격 체포됐고, 이후 시위가 일어나 수십 명의 지지자들이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했지요. 당시 비야 대통령은 온갖 부정 의혹과 낮은 투표율로 얼룩진 선거에서 70%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해 집권을 이어갔습니다.
이번 대선은 단순한 권력 재편이 아니라, 카메룬 민주주의의 생존을 가늠하는 시험대입니다. 43년 동안 억눌린 목소리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새 시대의 문을 두드릴지는 카메룬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깨어 있는 의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카메룬이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원동력입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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