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더불어민주당 3선 김윤덕 의원이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내정됐을 때 새 정부 부동산 정책을 믿기 어려울 거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지냈다고는 하지만 건설·부동산 쪽으론 비주류인 데다, 친명(친이재명)계 여당 중진 의원 겸직 장관이란 점에서 그가 미덥지 않았다.

선입견이면 차라리 좋겠다. 하지만 이런 불안은 8년 전인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 초대 국토부 장관으로 김현미 당시 민주당 3선 의원이 내정됐을 때도 그랬다.

의원 겸직 장관으로 그가 내정 일성부터 국토부 소관이 아닌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문제를 먼저 지적할 때부터 미덥지 않았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사실상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컨트롤타워를 맡고 김현미 장관이 손과 발로 움직일 거란 분석이 파다했었다. 시장에선 그를 두고 ‘바지 장관’이라고도 불렀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과 LTV·DTI 축소 등을 담은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인 ‘8·2 대책’을 발표하며 “사는 집이 아니면 파시라”라는 말과,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야당 의원 지적에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답변으로 이른바 ‘빵투아네트’ 논란까지 일으켰던 김 전 장관은 3년 6개월이라는 역대 최장수 국토부 장관이란 타이틀은 달았지만 실패한 부동산 대책의 아이콘이 됐고, 문 정부는 정권 교체라는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김윤덕 장관이 미덥지 않은 건, 이재명 정부 들어 사실상 국토부 주도의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이라 볼 수 있는 ‘9·7 주택공급 확대방안’부터 김현미 전 장관에게서 읽혔던 정치인 장관으로서의 자세가 엿보여서다.

‘공공 주도의 빠르고 많은 주택 공급’으로 포장됐지만, 뜯어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개혁 조처에 다름없다는 점에선 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강조해온 ‘양질의 주택 공급 확대’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가 앞으로 나올 부동산 대책들을 두고 어떤 ‘명언’을 남길지 알 수는 없지만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주지 못하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발언과, 원론을 벗어난 적 없는 무색무취의 답변은 집값을 잡겠다는 주무 부처 장관이 아닌 ‘살필 것’ 많은 정치인에 더 가까워 보이는 듯 하다.

사회생활 대부분을 오롯이 정치판에 몸담은 정치인이란 사실과, ‘금배지’를 단 의원 겸직 장관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도 그 때와 지금이 닮아 있다.

역대급 대출 규제로 볼 만한 6·27 대책 직후부터 ‘더 센’ 대책 발언이 이어지는 것도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다. 이것도 집값 잡기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 때와 판박이다.

수도 없이 반복된 대책 발표와 집값 상승, 추가 대책 예고는 시장 내성만 키웠다. 실제로 문 정부의 ‘8·2 대책’은 발표 당시 ‘역대급 규제’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1년 뒤 나온 ‘9·13 대책’은 ‘8·2 대책’을 능가하는 수위로 여겨졌고, 이후로도 세금·대출·청약제도·공급대책을 총망라한 유례없는 초고강도 규제가 예고되고 잇따르기를 무려 28차례나 반복했지만, 결국 집값을 못 잡았다.

‘더 센’ 대책을 예고하는 순간 시장은 먼저 움직인다. 이번 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이 예고되고도 서울·수도권 거래가 늘고 상당 지역에서 최고가 거래 기록을 갈아치우는 시장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히려 추가 대책이 나오기 전 서둘러 사둬야 한다는 불안 심리까지 더해지며 호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말은 형식을 규정하고,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고 했다. ‘더 센’ 대책은 말로 전해지는 순간 기존 대책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위험하다. 세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오고도 ‘더 센’ 대책을 다시 예고하고 이를 꺼내 들지 모르겠다. 비슷한 사람, 같은 말이 반복되는 것이 염려된다. ‘더 센 말’보다 ‘단단한 실행’이 필요한 때다.

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3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