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권 더밀크 대표

지난 10월 1일,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을 만나 많은 협약을 하고 갔다. 한국 언론은 환호했다. ‘AI 강국 코리아’의 서막이 열렸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100조 잭팟’ 이란 표현도 나왔다. 추석전 선물같았다.

그러나 이날 샘 올트먼 CEO의 방한 직후 나온 오픈AI의 공식 발표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큰 숙제를 남긴 방한이었음이 드러난다.

오픈AI의 공식 발표문을 뜯어보면 그들은 하나도 약속하지 않았다. ‘explore’(모색한다), ‘evaluate’(평가한다), ‘assess’(검토한다)라는 단어만 반복될 뿐 구체적 투자 금액도 확정된 일정도 없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발표를 ‘외교적 수사’로 간주한다. 한국이 AI 3강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의 주체는 오픈AI가 아니라 삼성과 SK라고 적시돼 있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암시하는 레토릭이다.

오히려 삼성과 SK가 오픈AI 엔터프라이즈 상품과 API를 도입한다는 ‘매출 약속’을 했다. 한국에서 큰 실익을 챙기고 간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협상 구조 자체가 ‘엔비디아’를 빼고는 성립이 되지 않는 딜이었다는 사실이다.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된 삼성과 SK가 생산하겠다는 월 90만장 HBM 웨이퍼를 누가 구매할 것인가? HBM의 실제 구매자는 오픈AI가 아니라 엔비디아다. 엔비디아가 GPU를 설계하면 SK하이닉스에 HBM을 주문하고, TSMC가 이를 패키징하는 것이 AI 칩 생산의 실제 구조다.

반면, 오픈AI는 올해 중동의 UAE와 노르웨이, 영국에서 각각 데이터센터 건설 사실과 금액, 추진 일정까지 공개해서 각각 스타게이트 UAE, 노르웨이, 영국으로 명명했다. 각국 정상들이 나와서 행사를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즉, 이번 발표에서 ‘스타게이트 코리아’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AI 데이터센터 경쟁력에 근본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토지 가격이다. 전력 인프라와 연결된 땅은 일반 토지 대비 수십 배에서 수백 배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둘째, 전기요금이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메가와트시당 122.1달러로 미국(80.84달러)보다 50% 이상 비싸고, 중동의 3배 수준이다. 셋째, 통신 인프라다. 한국은 국내 광케이블 보유율은 세계 최고지만, 글로벌 트래픽을 위한 다크 파이버와 해저 케이블 접점은 제한적이다. 미국 본토나 유럽과의 물리적 거리와 연결 경로 다양성 부족으로 초저지연 경쟁에서 불리하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앵커 오프테이커의 부재다. 데이터센터의 핵심 고객인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가 한국에는 없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클라우드 사업 규모는 기가와트 단위 데이터센터의 앵커가 되기에는 턱없이 작다.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한국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비싼 땅값, 높은 전기요금, 통신 지연 때문이다. 광주 데이터센터가 이를 증명한다. 최신 시설을 갖췄지만 앵커 오프테이커를 확보하지 못해 낮은 가동률과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픈AI는 최근 엔비디아와 140조원 규모의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이 거래가 보여주는 진짜 게임의 법칙은 명확하다. 오픈AI는 인프라 주권을 확보하려 하고, 엔비디아는 칩 공급자를 넘어 인프라 금융을 제공하고 생태계 전체를 조율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구조에서 한국 기업들은 HBM과 DRAM을 공급한다. 여전히 ‘부품 공급자’의 위치다. 엔비디아가 설계를 바꾸면 따라가야 하고, 엔비디아의 요구 가격에 맞춰야 하며, 엔비디아의 생산 일정에 맞춰 공급해야 하는 위치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빠르고 용량이 큰 HBM만으로는 안된다. 단순히 HBM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전체 AI 서버 시스템을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능력, 하드웨어·소프트웨어·냉각·전력을 통합하는 턴키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부품 공급자가 아닌 시스템 제공자가 될 수 있다.

AI는 몇 년 안에 끝날 트렌드가 아니라 수십 년간 지속될 패러다임 전환이다. 샘 올트먼과 찍은 사진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다. 붐업이 아니라 비즈니스로, 발표가 아니라 실행으로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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