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저작권이 중요하다”는 말만 되풀이
AI는 ‘데이터학습 기반’ 작동, 기존계약 무력화
AI 적극적 활용보다는 위험회피 성향에 머물러
‘인간 중심 창작’이란 개념 자체가 도전받는 중
“소라앱, 영상산업에 차원 달리하는 변화 촉발”
미국 IT 매체 더버지가 11일(현지시간) ‘헐리우드는 AI에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고 있다’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AI 급진화로 생긴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 간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분석해 주목된다.
AI로 인한 영화·미디어 업계가 당면한 위기의 본질을 짚은 것이다. 특히 오픈AI가 최근 공개한 영상 생성 앱 소라(Sora) 의 기술적 진보와 그 여파를 중심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AI 충격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픈AI 소라 앱의 기술적 수준은 이전의 AI 영상 생성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오픈AI는 소라앱 2 모델을 발표하며, 영상과 오디오 동기화, 물리 세계의 정밀한 묘사력, 캐릭터의 지속성 유지 능력 등을 대폭 개선했다.
예컨대 삼중 회전 점프, 보드 위의 공중 동작, 복합적인 동작 간의 연속성 등을 표현하는 능력이 놀랍도록 향상됐다. 이처럼 “영화처럼 보이는 AI 영상”이 대중 사용자에도 손쉽게 개방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할리우드는 충격과 혼란에 직면했다.
더버지는 스튜디오 관계자와 에이전트, 경영진 등이 모이는 로스앤젤레스의 미디어 행사 스크린타임(Screentime)의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많은 이들이 “저작권을 지킨다”는 익숙한 주장만 되풀이할 뿐 정작 실질적 대응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버지는 넷플릭스의 공동 CEO가 소라 앱 관련 질문을 회피했으며,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의 CEO는 AI를 ‘새로운 연필’(new pencil) 비유로 축소하려는 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게다가 소라 앱 공개 직후 벌어진 저작권 및 표현 통제 문제는 업계의 우려를 구체화했다. 초기 버전에서는 저작권 소유자가 미리 거부(opt-out)를 명시하지 않으면 AI가 자동으로 캐릭터나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러닝 중인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IP를 무단 활용한 작품들이 앱 내에서 공유되며 논란이 촉발되자, 오픈AI는 권리자들이 적절한 통제를 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할리우드가 단순히 “저작권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동안, 현실에서는 기술의 폭주가 속도를 냈다. 더버지는 이러한 상황을 “할리우드는 AI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는 말로 표현했다. 기술의 진화 속도가 광속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전통적 미디어 권력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버지는 ‘왜 할리우드는 이토록 무력한가’라는 물음을 이해하려면, 할리우드 산업 구조의 특징과 AI라는 기술의 본질적 속성 사이의 간극을 봐야 한다고 귀뜸했다.
먼저 저작권·계약 중심의 체계에 익숙해 있다는 지적이다. 영화·드라마는 수십년간 저작권, 배급, 창작자 계약, 배우 및 스태프 계약 등 복잡한 법률 체계 위에서 운용돼 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계약 갱신, 라이선스 조정, 로열티 구조 재구성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AI 영상 생성은 ‘데이터 학습 기반’으로 작동하기에, 기존 계약이나 협약이 얼마나 포괄할 수 있을지 ‘법적 획정’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론 콘텐츠 생산의 위험 회피 성향을 들었다. 할리우드는 대형 스튜디오 위주로 움직이며, 투자 대비 안전한 수익 모델을 중시한다. AI가 주는 기술적 이익보다 “불확실한 저작권 리스크”가 더 두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대중 소비자가 AI 콘텐츠와 실사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시점이 오면,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나 법률 소송 위험이 커진다.
속도 차이의 절벽도 할리우드가 극복할 수 없는 요인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단위로 기술을 혁신하며 시장을 재편하려 한다. 반면 할리우드의 의사 결정 구조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복잡하다. 여러 이해당사자가 얽혀 있고, 경영진-크리에이터-배급사 간 협의가 필요하다. 기술이 앞서나가면, 뒤처진 자들은 선택권이 줄어든다.
정체성과 재정의의 위기도 일어나고 있다. 배우나 감독처럼 인간 중심 창작자로서의 권리, 표현의 독창성, 감성의 가치 등이 AI 경계선 위에서 흔들린다. ‘인간 중심 창작’이란 개념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는 것이다. 더버지는 이러한 불안이 할리우드 내부의 태도 불일치와 무책임한 입장 표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소라 이후 영화산업은 어떻게 전개될까. 또 할리우드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더버지는 소라 앱의 등장은 앞으로 미디어와 영상 산업 전반에 차원을 달리하는 흐름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우선 저작권 규제 및 법체계 개편이 압박 받을 것이다. 기존 저작권 법제도는 정적 이미지나 문학작품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AI 기반 동적 콘텐츠에 대한 권리의 정의, 사후 통제 방식(opt-out vs opt-in), 생성 콘텐츠의 책임 주체 등은 정립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할리우드는 정부, 법률가, 기술기업과의 협업으로 새로운 규범을 함께 만들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론 새로운 수익 배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AI가 콘텐츠 창작의 일부를 자동화하는 시대가 온다면, 원작자·배우·감독 등 기존 권리자들을 어떻게 보상할지 과제로 대두한다. 예컨대, AI 모델 학습에 활용된 원본 콘텐츠 제공자에게 일정한 로열티를 지급하는 구조 등이 검토될 수 있다.
콘텐츠 신뢰성과 투명성 확보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AI 생성 영상 기술이 발달하고 늘어날수록, 소비자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AI로 생성한 영상도 원본과 사본이 혼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혼선을 없애야 한다. 워터마크, 메타데이터 표기, 출처 증명 방식 등이 권장돼야 하고 또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소라는 생성 영상에 워터마크를 삽입하는 등 위조 방지 수단을 병행하려 하고 있다.
끝으로 변화된 제작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AI를 창작 도구로 적극 수용하는 태도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할리우드는 AI를 두려워만 해서는 도태될 수 있다. 영화 후반작업, 시각 효과(VFX), 프리 비주얼화, 아이디어 확장 보조 등에서 AI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인간 창작자의 역할을 희석시키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야 한다.
결국 더버지는 기술의 흐름 앞에서 미디어의 전통적 권력들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경고한다. 소라 앱이라는 등장은 단순히 재미있는 신기술을 넘어, 콘텐츠산업의 규칙을 송두리째 바꿀 잠재력을 지닌 사건이다.
할리우드는 지금 그 변화의 문턱 앞에서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스스로 대응 전략을 수립하지 않으면, 기술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판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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