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중국의 음극재를 포함한 수출 통제 조치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긴 하지만,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흑연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당장 대안을 찾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수출 통제 조치 결정에 따라 공급망 다변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조치는 '전면 금지'가 아닌 '허가 전제 통제'지만 재편 속도를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 상무부가 지난 9일(현지시간) 홈페이지 공고에서 희토류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와 함께 인조흑연 음극재와 인조 흑연, 천연 흑연 혼합 음극재, 흑연 음극재 생산용 조립 공정 장비, 흑연 음극재 생산용 흑연화 장비, 흑연 음극재 생산용 코팅·개질 장비, 흑연 음극재 생산용 공정 기술 등 음극재를 대거 대상에 포함한 영향이다.
또 중국 상무부는 중량 에너지 밀도가 300Wh/kg 이상인 충·방전용 리튬이온 배터리와 충방전용 배터리 제조용 장비와 고성능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삼원계 양극재 전구체, 망간계 양극재 등도 대상에 넣었다. 희토류로 시작된 자원 무기화가 이제 배터리로 확장된 것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흑연의 수출 통제다. 인조흑연은 일본산으로 대체할 방법이 있지만, 천연흑연은 중국산 의존도가 절대적이어서다.
사실상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포스코퓨처엠이 아프리카산 천연흑연(인상흑연)을 가져와 구형 흑연과 흑연 음극재까지 생산한다는 구상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첨단전략산업 수입의존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차전지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의 중국산 수입 비중은 각각 97.6%, 98.8%에 달했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무역전쟁'의 새로운 카드로 배터리 소재, 특히 흑연을 전략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고 이 조치가 시행되면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음극재의 흑연 부분은 양극재랑 달리 전 세계의 약점이긴 하다"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도 배터리 음극재에 쓰이는 흑연을 '추적하기 어려운 자료'로 분류해 외국우려대상기업(FEOC) 규제에서 일정 기간 제외하기도 했다. 미국조차 당장 현실적으로 중국산 흑연에 매우 의존하고 있다는 산업 구조를 반영한 셈이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중국산 천연흑연(HSK코드 250410)의 한국 수입액은 지난해 약 4100만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역시 8월 말 기준 누적 3800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또 한국 기업들이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의 타격이다. 한국은 일본산 고순도 흑연을 일부 사용하지만 중국산과 블렌딩해서 쓰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저가형 LFP 배터리를 사용하는 ESS는 사실상 중국산이 없으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도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는 게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으로 직접 본토 진입은 여전히 제한적이어도 이미 포드와 CATL은 미국에 공장을 돌리고 있는 만큼 미국의 배터리 정책 방향이 바뀌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어 불확실성이 너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한나 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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