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올해 생리의학상·화학상 2관왕...87%가 과학분야 수상자 배출
30년 이상 한 우물 지원 결실...장기간 투자, 도전적 연구 장려 등 한몫
긴 호흡 갖고 기초과학 투자 확대...선도형 연구 확대 속 안정적 지원
우리나라가 긴 추석 연휴를 보내는 사이 일본은 노벨상 2관왕 수상으로 열도 전체가 들썩였다. 지난 6일 노벨 생리의학상에 이어 지난 8일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국가적 겹경사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0~2002년 3년 연속 화학상 수상자를 냈고, 2002년에는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동시에 받는 영예를 안았다. 2008년에는 무려 4명(물리학상 3명·화학상 1명)의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런 수상 흐름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됐고, 과학분야 노벨상에 집중됐다. 지금까지 일본은 31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이 중 과학분야 수상 내역을 보면 물리학상 12명, 화학상 9명, 생리의학상 6명 등 총 27명(87%)에 이른다. 10명 중 8명이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셈이다.
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성적을 거둠과 동시에 과학상만 따지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이다. 아직까지 단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우리나라와는 점점 비교 대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일본은 왜 유독 노벨 과학상에 강한 면모를 보일까.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 투자와 도전적·창의적 연구를 장려하는 문화, 과학자에 대한 신뢰 등이 일본의 연구 생태계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때마다 공통적으로 거론된 요인이다.
지난 8일 열린 노벨 화학상 발표 설명회에서 김자헌 숭실대 화학과 교수는 “기초과학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함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실패를 감수하며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 환경, 긴 호흡을 갖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정부의 지원 시스템이 결실을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연구재단이 2024년 펴낸 ‘노벨 과학상의 핵심 연구와 수상 연령’을 보면 수상자들은 핵심 연구 시작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평균 33.3년이 걸렸다. 분야별로는 물리학이 38.2년으로 가장 길고, 생리의학상 31.5년, 화학상 29.9년에 달했다.
일본은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이 20~30년 장기간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지원한다. 과학적 성과는 단기간에 나오지 않고 긴 호흡을 갖고 연구자를 신뢰하고 안정적으로 지원할 때 비로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인식이 일본 연구 생태계에 오래전 부터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교수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주위의 비난에도 30년 간 조절 T세포 연구라는 한 우물을 판 끝에 비로소 인정받게 됐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교수는 수상 소감으로 “과학자에게 새로운 도전은 진정한 기쁨이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30년 넘게 즐겨왔다”고 밝힐 정도로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 연구를 해 왔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추격형 연구에 익숙한 나머지 선도형 연구를 시작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이렇다 보니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정권 입맛과 연구 트렌드 등에 따라 들쑥날쑥하다. 이마저도 윤석열 정부에선 느닷없이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돼 기초연구 과제가 대폭 축소됐다.
이 때문에 대학 교수들은 실험실 문을 닫거나 축소하고, 석박사 과정생을 내보내는 등 기초연구 생태계가 크게 훼손됐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관계자는 “지금 중요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정책만으로는 노벨상을 기대할 수 없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보다 창의적인 연구에 도전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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