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차 멀미를 잘 앓는다면 장거리 이동은 늘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미리 멀미약을 먹고 대비하더라도 불시에 졸음이 몰려오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이처럼 명절이나 여행 등 장거리 이동을 할 때 약 대신 음악으로 멀미를 예방할 수 있으면 어떨까? 최근 국제 학술지 '인간 신경과학 프론티어스'에 실린 한 연구는 뇌파 분석을 통해 어떤 음악이 멀미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정량화했다. 어떤 종류의 곡이 멀미 해소에 도움을 줄까? 반대로 멀미를 심화하는 음악도 있을까?
중국 시난대학교를 비롯한 중국 내 합동 연구팀은 일상에서 멀미를 자주 겪는 사람들이 차에 타기 전 미리 긴장하는 상황에 주목해 이번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진은 긴장을 풀어주는 음악의 기능이 멀미의 대응책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가상 운전 시뮬레이터 환경을 조성한 연구진은 초기 선별 검사 후 멀미에 대한 중간 수준의 민감성을 가진 성인 3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여섯 그룹으로 나뉜 참가자 중 다섯 그룹은 가상 운전 시뮬레이터에 앉아 시각 정보와 평형감각의 불일치를 경험하며 멀미 증세를 경험했다. 그렇게 증상이 오면 60초 동안 즐거운 음악·차분한 음악·열정적인 음악·슬픈 음악 등 네 종류의 음악을 듣거나 음악 없이 명상하며 자연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한 그룹은 멀미를 느끼기 전 운전을 마치도록 해 기준치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 뇌파 검사(EEG)와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했는데, 수집한 뇌파 데이터를 분류 알고리즘과 결합해 멀미 인식 모델을 구축하고 각 음악이 증세를 얼마나 낮춰주는지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음악은 멀미 증상을 줄이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됐다. 하지만 모든 음악이 그렇지는 않았다. 즐겁거나 차분한 음악은 증상을 크게 완화해 주었지만, 슬픈 음악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즐거운 음악은 멀미를 57.3%나 누그러뜨려 주어 효과가 가장 좋았다. 차분한 음악도 그와 비슷하게 56.7%의 감소 효과를 보였다.
열정적인 음악은 48%의 효과를 보였고, 슬픈 음악의 수치는 40%에 그쳤다. 아무 음악을 듣지 않고 자연 회복한 대조군(43.3%)보다 낮은 수치다.
EEG 분석 결과를 보면 멀미를 심하게 느낄수록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의 활동이 단순해지고, 증상이 완화되면 신호가 다시 복잡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진이 멀미 예측을 위해 사용한 인공신경망 모델은 후두엽 채널에서 특히 정확도가 높았는데, 이는 멀미의 근본 원인이 시각 정보와 전정 기관 사이의 불일치에 있다는 기존 이론과 잘 들어맞는다.
실제로 차에 타면 풍경은 흔들리지만, 몸은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어 뇌의 시각 처리 체계가 교란된다. 이런 불일치가 멀미로 이어지는 것이다.
차분한 음악은 긴장을 풀어 자율신경계가 안정되도록 하고, 교감 신경 흥분도를 줄여 메스꺼움과 현기증 증상을 완화해 준다. 이런 종류의 음악은 후두엽의 알파파 활동을 증가시켜 뇌가 이완 상태가 되도록 했다. 즐거운 음악의 경우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해 감정 상태를 고양시켜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와 달리 슬픈 음악의 차분한 선율은 전전두엽의 감정 조절을 억제하는 효과를 냈다. 이는 부정적 감정을 키워 멀미의 불편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중국 서남대 유에 치종 박사는 음악을 활용해 멀미에 대처하는 방식이 약을 복용하는 기존 방법과 달리 비침습적이고 저렴하며, 개인에 맞춤해 적용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진들은 이번 연구의 가장 큰 한계로 표본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함께 짚었다.
기운이 빠지는 슬픈 발라드 대신 선율이 부드러운 포크송이나 발랄한 하이톤의 댄스 음악을 듣는다면 어지러운 뇌를 잠시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KISTI 제공>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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