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로 변한 가자지구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자신의 평화구상에 모두 동의했다고 발표한 직후 흩어졌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와디 가자로 모여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폐허로 변한 가자지구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자신의 평화구상에 모두 동의했다고 발표한 직후 흩어졌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와디 가자로 모여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하마스, 트럼프 평화구상 동의, 종전 길 트여

하마스 살육 테러에 이스라엘 2년간 초토화작전

하마스 무장해제, 국가 인정이 평화정착 마침표

트럼프, 10년간 가자 신탁통치…안정화에 필요

최상의 기후, 지리적 환경 갖춰 최고휴양지 가능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학살과 인질 납치로 시작된 가자 전쟁이 꼭 2년을 맞은 지난 8일, 마침내 종식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마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20개 항목의 가자지구 평화구상’을 전격 수용하기로 하면서다.

이번 합의는 2025년 들어 처음으로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동시에 수용 의사를 밝힌 중재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평화안의 제1항에는 ‘가자지구의 국제 신탁통치’라는 전례 없는 구상이 포함돼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가자를 향후 10년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의 관리 하에 두고, 그 기간 동안 정치적 안정과 경제 재건을 병행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미국 주도 ‘신탁통치’…리조트·데이터센터·전기차 공장까지

워싱턴포스트가 지난달 31일 입수해 보도한 38쪽 분량의 계획안에 따르면, 미국은 ‘그레이트 트러스트’(GREAT Trust·Gaza Reconstitution, Economic Acceleration and Transformation Trust)라는 신탁기구를 설립해 이스라엘로부터 행정권을 위임받게 된다. 신탁 기간은 최소 10년이다. 이 기간 동안 가자지구는 기존의 분쟁 지역에서 첨단 복합 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계획안에는 지중해에 면한 약 365㎢(남북 길이 40~50㎞, 동서 폭 6~12㎞)의 땅에 고급 콘도미니엄, 해변 리조트, 데이터센터, 전기차 조립 공장, 스마트시티가 들어서는 ‘지상낙원 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기자회견에서 “가자를 중동의 리비에라처럼 만들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 모두 행정 개입을 중단하고, 온건한 팔레스타인 세력이 자리 잡을 때까지 신탁기구가 직접 행정·치안·재건을 담당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기구의 실제 집행 인력은 아무래도 팔레스타인인들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나온 구상에는 온건한 팔레스타인의 기술관료들이 참여한다. 신탁통치 행정부는 이들을 실행인력으로 삼아 제3의 거버넌스로 유지된다. 단 그 위에 감독기구로서 ‘평화이사회’를 두는데, 의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맡고 수장을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원조달은 미국 정부의 직접 재정 투입은 최소화하고, 국제 자본과 민간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210만~230만명에 달하는 가자 주민의 거주 문제다. 트럼프 평화구상은 “원할 경우 현지 거주를 보장하되, 떠나길 원하는 주민에게는 일정 규모의 보상을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자발적 이주를 선택한 주민에게 5000달러의 현금 지급, 4년간의 임대 보조, 1년치 식량 지원 등을 패키지 형태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획은 일각에서 ‘경제적 인센티브를 동반한 강제 이주’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인권단체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주민의 자발성을 가장한 축출”이라며 “사실상 신식민주의적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프로젝트가 실행되려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가자지구의 거주 인구는 줄일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상당수 주민을 충분한 보상을 쥐어주고 이웃 아랍국가나 유럽 국가로 이주시키려는 복안이 있는 건 십중팔구 사실이다. 다만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트럼프 구상의 배경은 ‘지중해의 매력’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종전 해법의 발상은 역시 부동산개발업자다웠다. 이 지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느 한쪽의 손에 놓이면 언제든 또 갈등이 불거지게 마련이었다. 제3의 국제적 통치방식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와 부합되는 지역적 성격은 국제적 휴양지(리조트)였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왜 쑥대밭이 되어버린 가자지구에 매료됐을까.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가자의 지리적·기후적 매력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가자지구는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해 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이스라엘, 남쪽으로는 이집트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40여㎞ 길이의 해안선을 따라 푸른 지중해가 펼쳐진다. 중동 대부분 지역이 사막 내륙에 갇혀 있는 것과 달리, 가자는 바다를 품은 몇 안 되는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가자지구. 남북 40~50㎞ 동서 6~12㎞의 길다란 형상에 지중해에 면해 있다.
가자지구. 남북 40~50㎞ 동서 6~12㎞의 길다란 형상에 지중해에 면해 있다.

평균 기온은 연중 10~30도 사이를 오르내리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다. 햇빛이 풍부하고, 겨울도 선선한 편이며, 여름철 해수 온도는 26도를 넘는다. 미국 개발팀은 이러한 조건이 “연중 해변 관광이 가능한 최적의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전후 복구가 완료되면 연 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가자는 과거에도 ‘알-부스탄(Al-Bustan)’ 리조트나 ‘크레이지 워터파크(Crazy Water Park)’ 등 해변형 복합 리조트가 시도된 적이 있다. 이들은 내전과 폭격으로 파괴됐지만, 당시 운영 경험은 가자가 지중해 관광지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또한 일조량이 풍부해 태양광 발전에 유리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신탁기구는 향후 리조트와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을 태양광 기반으로 충당하고, 잉여 전력은 이집트와 이스라엘로 수출할 수도 있다.

관광·산업 복합단지로…‘스마트 가자’ 구상

워싱턴포스트가 공개한 세부안에 따르면 미국은 가자 개발을 다섯 개 권역으로 구분해 ‘관광벨트’와 ‘산업벨트’를 병행 개발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1권역은 해변 리조트 단지로, 국제 체인호텔과 마리나, 요트 부두, 고급 콘도미니엄이 들어선다. 2권역은 스마트시티와 데이터센터, AI 클러스터가 자리하며, 3권역은 전기차 공장과 친환경 제조 단지가 조성된다. 내륙 4·5권역은 농업재생지와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전쟁 이전의 습지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된다.

특히 ‘와디 가자(Wadi Gaza) 자연보호구역’을 중심으로 한 생태 관광도 계획에 포함돼 있다. 신탁기구는 향후 가자를 ‘리비에라형 관광지’와 ‘중동형 첨단도시’를 결합한 새로운 모델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남은 과제, 주민의 삶과 권리 보장

그러나 화려한 청사진만큼이나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무엇보다 최대 230만 명의 주민이 실제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신탁통치 기간 동안 주민이 거주를 원할 경우, 그들의 주거권·노동권·복지권을 보장할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또한 관광·산업 개발로 인한 토지 가격 상승과 임대료 폭등이 현실화될 경우, 원주민이 도시 밖으로 밀려나는 ‘개발 난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자지구는 이미 물 부족과 오염, 폐기물 처리 문제로 환경부담이 극심한 지역이다. 관광과 산업이 동시에 확장되면 환경파괴와 생태 훼손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사회는 이 구상이 진정한 평화 복원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실험인지를 주시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이를 “갈등의 종식이 아닌, 전쟁의 외형만 바꾼 새로운 통치 모델”이라고 깎아내렸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주민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체제이자, 중동 평화의 경제적 해법”이라며 정면 반박하고 있다.

트럼프의 구상은 단순한 중재안이 아니라, 가자지구를 경제적 재건의 전초기지로 만들겠다는 장기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는 “중동 평화의 열쇠는 무기가 아니라 투자와 개발에 있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제로 주민의 권리를 보장하며 실행될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지배구조로 귀결될지는 미지수다. 가자 해변에 리조트와 첨단공장이 들어서더라도 그곳에 사는 이들이 평화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전쟁의 폐허 위에 건설될 ‘리비에라의 꿈’이 희망이 될지, 환상이 될지는 우선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2단계 협정에 합의하고 충실히 합의사항을 준수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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