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정치평론가
정치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그리고 표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국내서만 하더라도 역대 대통령 후보들은 선거를 앞두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혈안이 된 적이 많았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일약 대선 후보급 정치인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이런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에 대한 동경은 ‘대중적 환상’(Public Fantasy)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특정 프로그램 출연만으로 인기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환상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최고의 인기 개그맨이었던 이경규씨가 진행하는 예능에 출연해 톡톡한 효과를 보기도 했다. 딱딱한 이미지의 정치인들이 대중적 호감도를 얻는 데는 예능 출연만 한 게 없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 모두 예능에 출연했었고,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서도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나란히 예능 프로그램에 경쟁하듯 출연했었다. 큰 선거를 앞두고 대중 소통과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예능 출연을 두고선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 부부는 지난 6일 추석 연휴 특집으로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다. 이날 방송은 이 대통령 부부의 취임 후 첫 예능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대통령과 김 여사는 K-푸드를 홍보하기 위해 예능 출연을 결심했다며 냉장고를 공개하는 대신 한우, 시래기, 더덕, 무 등 우리 제철 식재료를 소개했다. 웹툰 작가 김풍이 시래기를 활용해 만든 요리 ‘이재명 피자’를 맛본 뒤엔 “요리는 장난스럽게 했는데, 맛은 장난이 아니다”라며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손종원 셰프가 만든 전통 주전부리 4종 ‘아자아잣’ 중 잣을 이용해 만든 타락죽을 먹고 “먹어본 중 제일 맛있다”며 극찬했다. 대통령이 국민과 한결 더 가까워지고 K-푸드를 전 세계적으로 홍보한다는 의도였지만, 정치적 공방은 방영 전부터 뜨거웠다.
이 대통령의 예능 출연이 비판을 받는 결정적 이유는 ‘출연 시점’과 ‘어정쩡한 브리핑’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민들이 엄청난 불편을 겪었고, 국가전산망 장애 담당 팀을 총괄하던 행정안전부 공무원이 지난 3일 사망한 상황에서 대통령 부부의 예능 출연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녹화 시점은 화재발생 며칠 뒤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의 출연 영상에 비판 댓글이 많이 달리자 작성자의 뜻과 상관없이 삭제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예능을 찍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국가재난 상황에 공무원 순직 등의 사건 사고들이 연속해서 발생하는 이 상황에 대통령이 예능 찍고 웃고 떠들 때가 아니지 않나”라는 댓글 외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게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의 태도인가. 우리 집 불타고 있는데 집안 가장이 놀러 가면 이해하겠나?”라는 비판도 달렸다.
또 하나의 지적은 대통령의 예능 녹화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은 대통령실의 브리핑이었다. 여론에 미칠 영향을 감안할 때 악재라면 악재다.
빅데이터는 이재명 대통령의 예능 출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빅데이터 심층 분석 도구인 썸트렌드(SomeTrend)로 지난 10월 3일부터 7일까지 ‘대통령 예능’에 대한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를 도출해 보았다. 대통령 예능에 대한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는 ‘논란’, ‘허위사실’, ‘의혹’, ‘비판’, ‘의문’, ‘잃어버리다’, ‘비판하다’, ‘부정하다’, ‘명예훼손’, ‘화제’, ‘외면하다’, ‘문제삼다’, ‘심각’, ‘체포’, ‘전산망 마비’, ‘애정’, ‘공감’, ‘창의적’, ‘웃음’, ‘뭇매맞다’, ‘부적절하다’, ‘비난받다’, ‘모자라다’, ‘큰 피해’, ‘적절하다’, ‘문제없다’, ‘깊이있다’, ‘웃다’, ‘식재료 살리다’, ‘공분 사다’ 등으로 나왔다. 대통령의 예능에 대한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를 보면 내용에 대한 지적보다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빅데이터 감성 비율을 보더라도 부정이 72%로 긍정 26%보다 월등히 높다.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오해 받지 않게)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은 정교해야 하고, 국민들로부터 의심 살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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