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14세.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교황 레오 14세.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인 출신의 레오 14세 교황이 미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에 맞서 더욱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지난 8일(현지시간) 바티칸을 방문한 미국-멕시코 국경 지역의 주교와 사회복지사들로 구성된 대표단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민자 가족들의 편지 수십 통을 전달받았습니다. 텍사스주 국경도시 엘패소의 마크 자이츠 주교와 엘패소교구의 이민자 권익 옹호 단체 ‘희망국경연구소’ 회원들은 이민자들의 고통을 담은 4분짜리 비디오도 교황에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알현 행사에 참석한 딜런 코빗 희망국경연구소 국장은 교황이 비디오를 끝까지 시청했고, 시청한 뒤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전했습니다. 그는 “교황은 ‘여러분은 나와 함께 서고, 나 역시 여러분과 함께 설 것이며, 교회는 계속해서 이민자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편에 설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코빗 국장은 교황이 미국 가톨릭 주교들에게 미국 내 이민자 권리 보호 문제에 대해 “더욱 단합되고 더욱 강력하게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자이츠 주교 또한 AP 통신에 교황이 미 주교회의가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가톨릭교회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이자 페루 시민권자인 레오 14세는 전임자인 프란치스코의 노선을 이어받아 즉위 초부터 이민자들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죠. 최근 몇 주 사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왔습니다.

지난 5일엔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이주민과 선교사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며 ‘차가운 무관심이나 차별의 낙인’으로 이주민을 대해선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전 세계 교회가 폭력을 피해 고향을 등진 이주민들에게 환영과 연민, 연대를 제공할 과제를 안게 된 새로운 선교의 시대에 놓였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30일에는 “낙태에 반대하지만 미국 내 이민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에 찬성하는 사람이 생명을 존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이 가톨릭교회의 핵심 가르침과 모순된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미국 가톨릭 지도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단속이 이민자 가족을 해체하며 이민자 공동체에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며 이를 규탄해왔습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이민 단속이 공공 안전과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이며, 현 행정부에서 비인도적인 대우는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편 로이터·AFP·가톨릭 뉴스통신 등에 따르면 바티칸(교황청)은 7일(현지시간) 레오 14세가 내달 27~30일 튀르키예, 30일~12월 2일 레바논을 방문한다고 발표했습니다. 5월 즉위 이후 첫 해외 순방입니다.

교황은 튀르키예에서 이즈니크(고대 니케아)를 방문해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을 기념할 예정입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서기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리 분열을 막기 위해 소집했죠. 삼위일체론을 확립하고 교회를 일치시킨 기독교 역사의 중대한 이정표로 꼽힙니다.

레바논에선 역내 평화를 호소하고 중동 지역 기독교인들이 처한 어려움에 관해 논의합니다. 2020년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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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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